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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우리는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에 있다가 어디로 가는가』에 대하여 - 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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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608회 작성일 22-06-05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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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영철(沈英喆)의 세 번째 개인전에 부쳐


『인간, 우리는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에 있다가 어디로 가는가』, 이 전람회 표제부터가「성경적(星鏡的)」이다. 그리고 이 작가의 모든 작업이 바로 그 종교적 메시지 전달에 있음은 두말 할 나위도 없겠거니와, 그의 모든 조형적 발상도 또한 여기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다.

어떤 작가들에게 있어 이와 같은 사실은 하나의 절대적인 명제(命題)이며 그것이 모든 예술 행위를 규정한다. 그리고 심영철의 경우가 여기에 속한다. 그는 조각가이자 동시에 종교적 메시지의 전달자임을 자인하고 있으며 그리하여 그의 예술적 신조 그리고 역량 또한 보다 차원 높은 규범을 따르고 있는 것으로 믿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규정 내지는 규범이 자유로운 예술 행위를 규제하는「일방적」인 것일 수는 없다. 그것은 다시 말해서 종교적 발상과 예술적 영감이 따로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며, 더 나아가 종교적 귀의(帰依)가 오히려 보다 풍요로운 예술적 결실을 맺게 한다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예술적 결실이라고 했을 때, 그것은 특히 심영철의 경우 일차적으로 조형적 레파토리의 확대와 궤를 같이하고 있거니와, 그의 세 번째의 개인전에서 보여주는 「종교적 환경」 작품이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바꾸어 말해서 그의 작품이 단순한「성경 도해(圖解)」로 그치지 않고 그 메시지를 어떻게 조형화하고 있느냐에 있는 것이다.

앞서 지적했듯이 심영철은 우선은 조각가이다. 그러나 막상「조각」이라고 했을 때, 우리는 오늘날 이미 그 정체마저 잃은 것 같고 또 실제로 조각이라는 개념 자체가 해체되고 말 듯이 보이는 것이다. 그와 같은 조각적 상황에서 심영철은 차라리 그 해체를 전제로 하여 보다 종합적인 조형의 장(場)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동시에 종교적 메시지의 장이기도 하다.)을 연출해내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심영철은 전시장을 독립된 조형적·종교적 연출의 공간으로 탈바꿈시키고 있다. 그 공간의 구성 요소는 매우 다양하며 동시에 각 요소마다 특정 테마와 함께, 다시 말해서 각기의 표제와 함께 독립된 작품으로서의 한 단위(單位)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낱개로서의 그 작품들은 통상적인 조각을 비롯하여 (예컨대 인체 또는 인체의 부분·염소머리·부조 등) 일상적 오브제(통나무·철조망·거울·사다리·광목천 등) 그리고 빛과 비데오, 더 나아가서는 일종의 자동적 퍼포먼스(「워터 스크린」 비데오 및 거울의 반영 등)를 포괄하고 있으며 그것이 하나로 통합되어 환경적 인스털레이션의 성격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환경적」이라고 했을 때, 그것은 심영철의 경우, 단순한 물리적 환경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다. 낱개의 작품 모두가 종교적 메시지를 지니고 있듯이 그것들이 조성하는 환경 또한 보다 승화된 정신적 공간으로 변모하고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일상적 오브제 또는 또 다른 사물들의 아상블라쥬가 곧 정신적 표상(表象)의 징검다리가 되고 있는 셈이다.

한편 정신적 공간으로서 환경적 인스털레이션이라고 했을 때, 그것은 또한 제3자(관객)의 개입을 전제로 한다. (어떤 작품은 관객의 개입 없이는 작품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그 개입은 두말 할 것도 없이 작품과의 만남을 말하는 것이기는 하되, 그 만남에 있어 관객은 작품 넘어의 또 다른 계시(啓示)의 세계로 이끌려 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계시가 흔히 볼 수 있는 입습적인 그리스도교적 도상(圖像)에 의해서가 아니라 현대미술이 오늘날 스스로 떠맡고 있는 갖가지 방법론에 의해 표현되고 있다는 사실에서 심영철의 직업의 진정한 의미를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조각가로서의 심영철의 작업에 있어 실제로 작품 속에 담겨진 종교적 메시지와 그것을 자신의 조형 체계에 따라 형상화하는 방법론과의 사이의 갈등은 그가 두고두고 풀어나가야 할 과제가 아닌가 생각된다. 왜냐하면 그는 그의 작품을 통한 단순한「성경 풀이」에 만족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그 메시지의 형상화를 위해 가능한 한의 모든 방법·형식·재료를 동원하고 있으며, 그것들이 현대미술의 전체적인 맥락 속에서 스스로를 주장할 수 있기를 원하고 있는 것이다.

현대미술의 맥락에서 볼 때, 심영철의 작품은 라이트 아트, 키네틱 아트 또는 인스털레이션의 범주 속에 들어갈지도 모른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볼 때, 그의 작품은 도상적(圖像的)인 한계를 뛰어넘음과 동시에 그와 같은 유형적 범주를 또한 뛰어넘고 있다. 예컨대 고대 이집트의「마스타바」(계단식 피라미드)를 생각하게 하는 성경책의 아상블라쥬작품, 유리판에 물이 흘러내리며 그리스도상(像)을 부각시키고 있는「워터 스크린」또는 컴퓨터 네거 필름에 의한 영상과 부조 및 네온 콜라쥬 등의 일련의 작품을 통해 그는 조형 영역의 확대라는 또 다른 과제와 대결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대결의식이 심영철에게 있어서는 종교적 명제(命題)와 짝을 이루며 그의 모든 작업의 원동력이 되고 있는 것이다.


1990. 11 이일(李逸)


출처 : 1990. 11 인공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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