섭리의 미학으로서의 조각세계 - 정만호 > 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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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리의 미학으로서의 조각세계”

아주 우연한 기회에 작가 심영철씨의 작품을 대하게 되었다. 몇 가지 작품의 단편을 통하여 대화를 나누는 동안 나는 작가의 작품의 영역이 신선하고 메시지가 강하게 담겨져 있음을 알고 야릇한 느낌을 받았다. 레이저 홀로그램을 전공하고 자연과학 분야의 연구를 하고 있는 나에게는 매우 친밀감을 주었고 작품 전체가 주는 느낌이 마치 하나의 홀로그램을 보고 있다는 착각을 갖게 하였다. 이 점이 조각분야와 깊은 관련이 없는 내가 선뜻 그녀의 작품세계를 글로 표현하고 싶은 생각을 갖게 된 동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조각은 인간의 가장 오랜 예술행위일 것이다. 주위에 널려있는 돌, 나무, 흙들을 사용하여 손으로 빚고 다듬는 과정을 통해 삶의 도구를 만들던 먼 인류의 시대에 조각의 형태는 이미 존재하였다. 좀 더 구체적으로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지으셨다 하니 그 분은 과연 첫 번째 조각가임에 틀림없다. 태초부터 존재한 조각의 영역은 넓게는 공간예술에 속한다. 온 우주에 가득 찬 조각의 흔적은 단편적인 조각물로 존재하기 보다는 빛, 바람 그리고 소리들 속에 포함된 창조의 흔적으로 보존되어 있다.

시간의 흐름 속에 우주만물은 인간의 정신세계에 깊은 인상을 주며, 인간의 궁극적인 삶의 틀을 형성하여 가고 있다. 최근에 와서 자연은 파괴되고 오염되는 과정에서 창조된 인간의 존엄성은 극히 위험한 도전의 상태에 직면하고 있다. 이에 따라 환경을 보존하고 창조의 미학을 회복시키려는 시도가 환경조각을 비롯한 예술의 영역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작가 심영철씨의 작품의 소재는 참으로 다양하다. 돌과 나무를 비롯한 보편적인 자연 소재를 사용하는가 하면 조명과 실루엣을 통한 영상 표현도 시도하고 있다. 특히 전자, 기계 부품과 첨단 기술을 접목한 키네틱 조각도 눈에 띄는데 이는 작가의 다양한 실험 정신과 강한 표현 능력이 표출되고 있음을 반영한다. 그녀의 작품은 소재의 다양성과 스케일의 방대함과 더불어 작가가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강한 것이 특징이다. 특히 상실되어 가고 있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절실히 요구되는 상황에서 작가는 이러한 욕구를 충족하고 있다.

조각의 생명력은 3차원 물체의 표현에 있다. 형상화된 3차원 조각은 주어진 공간 내에서 작가의 작품공간에서 강한 느낌을 받게 된다. 그녀의 작품은 본질적으로 3차원 공간을 갖고 있다. 보다 정확히 표현하면 관객으로 하여금 3차원 공간의 의미를 느끼게 한다. 보는 사람들은 작품의 공간의 한점에 서 있을 때 작품의 속에 표현되어 있는 3차원 공간 예술에 시선이 집중되게 된다. 이러한 사실은 매우 독특하고도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되는데 일반적으로 3차원 공간내에 존재하는 입체 조각물이 전시된 공간과도 확실히 구별된다는 것이다. 3차원의 세계를 드려다 볼 수 있으며 그 세계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작품의 창과 문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작품의 창이 단순히 3차원의 세계를 보는 창의 역할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주된 조각물로서 다가온다. 관객은 전면에 웅장하게 표출되고 있는 작품을 감상하다가 어느 부분엔가 존재하는 창을 발견하고는 그 속 깊숙이 존재하는 작품을 보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완전한 입체공간을 뜻하는 홀로그램의 근본원리를 담고 있다. 홀로그램은 레이저를 이용하여 3차원의 물체 공간을 사진필름에 기록한 것으로, 홀로그램에 빛을 비추면 기록된 3차원 물체가 재생된다. 홀로그램은 한 개의 작품의 창이 되며 그 속에 작품의 실물이 빛과 함께 부활되는 것이다. 그 속에는 작은 우주가 존재하며 차갑게 죽어있던 물체가 구원의 빛으로 인하여 삶의 실상으로 되살아나게 된다. 그녀의 작품의 창속에 존재하는 실물은 작가의 메시지이며 마치 작가의 내면세계를 드러내 보이고 있는 듯하다.

관객은 이러한 작가의 내면세계를 심도있게 관찰할 수 있으며 강한 인상으로 남게 된다. 작가의 메시지는 마치 렌즈에 의해 빛이 모아져 강한 빛을 내어 종이를 태우 듯 작품의 창을 통하여 우리의 가슴속에 흔적으로 남게 된다.

이러한 시도는 92년도 작품인 ‘삶과 죽음을 주관하시니’에서 구체화되기 시작하여 거대한 나무를 거칠게 깎아내어 벽의 형상을 만들고 그 일부분에 뚫어진 공간의 창을 통하여 십자가의 실상을 표현한 작품으로 발전되고 있다. 그보다 몇 년 앞선 89~90년대의 작품은 그녀가 작가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은 강한 욕구를 나타내고 있는데, 일련의 작품인 ‘메시지’는 대표적인 예이다. 이러한 작가의 메시지 전달 시도는 진솔한 작품의 예에서 구체화되는 것이다.

작가의 메시지는 기독교적인 구원과 심판, 그리고 삶과 죽음을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주제는 ‘요한계시록이 갖는 용의 의미는’과 ‘남겨진 사람들’에서 실루엣과 구체적인 실상으로 표현되는데 작품의 소재에 다양한 광원을 사용하고 있기도 하다.

또한 참다운 키네틱 조각을 실현하기 위해 강한 메시지의 부여 및 홀로그램을 이용한 작품영역을 넓혀 가고 있다. 이번에 전시되는 작품은 ‘섭리’를 주제로 제작되었는데 홀로그램 작품 속에 접목시킨 것이 특징이다. 그녀의 작품은 전에 이미 홀로그램적인 특이한 입체영상을 구조적으로 표현하였는데 이번에 홀로그램을 작품에 결합시킴으로서 작가의 영역을 넓히고 있다. 홀로그램은 2차원의 필름평면에 3차원의 입체 영상을 포함하고 있는 점이 커다란 매력이라 할 수 있다. 홀로그램은 어둠속에 닫혀있는 창(Window)이라고 할 수 있다. 빛에 의해 창은 열리고 놀랍게도 아름다운 색채를 띤 3차원의 세계가 펼쳐진 홀로그램은 이렇듯 3차원 조각예술과 어울리는 것이다. 관객들은 작가의 실물조각과 어울어져 존재하고 있는 허상의 조각을 통하여 실물에 대한 갈망과 ‘빛의 섭리’를 깨닫게 된다. 어둠의 절망과 갈망 속에 묻혀있는 인간의 세계에 삶의 부활을 통한 조화를 경험하게 된다.

홀로그램은 하나의 평면에 서로 다른 메시지들을 반목이 아닌 조화의 세계로 표현 가능하다. 이것은 다중노출의 테크닉으로 실현하여 단절되어 있는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의 세계를 스테레오 기법으로 연결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무지개 홀로그램은 창문의 폭을 점점 좁혀 실날같은 창틈으로 빛을 받아들임으로써 보다 선명하고 화려한 3차원 영상을 표현할 수 있다. 무지개의 상징이 ‘약속’인 것처럼 무지개 홀로그램으로 거대한 작품 속에 작은 창을 장식한 그녀의 조각품은 미래에 대한 강한 신의 섭리를 암시하고 있는 듯하다. 시간의 흐름을 표현한 주위의 키네틱 조각과 어울어져 창조공간에서의 삶과 죽음이 섭리라는 커다란 힘에 이끌려 궁극적인 조화의 세계로 나타난다.

아무튼 홀로그램을 이용한 이러한 일련의 발전과정은 작품을 통하여 작가의 내면세계를 숨김없이 솔직하게 표현하고 관객의 영역을 넘어 인간의 삶과 구원의 문제를 구체적으로 제시함으로써 기독교적인 메시지의 전달자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1993. 정만호 박사 (한국 표준과학 연구원 광학연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