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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노피아(Technotopia)의 전도사, 심영철의 '전자정원' - 김종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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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640회 작성일 22-06-05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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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노피아(Technotopia)의 전도사, 심영철의 '전자정원'


 “내가 시작한 비디오는 결과적으로 과학기술이 생산해내는 예술 형식이지만, 그 지향점은 기술을 이용한 자연주의와 리얼리즘의 부활이었으며 예술의 우상화를 견제하는 영상 복제의 수단으로서 인간화된 기술 개발이었다.” 

- 백남준 


 21세기의 미술 - 새로운 세기의 미술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인가? 특히 현대미술의 급격한 변화 속에서 미래에 미술의 방향을 진단, 가늠해 보는 것은 여러가지 측면에서 흥미있는 일이다. 그렇다면 21세기에는 과연 어떤 미술이 유행을 하고, 무슨 예술이 주목을 받고 활개를 칠 것인가? 아마도 미술 전문가들은 이러한 이름을 일컬어 ‘21세기형 미술’이란 무엇인가? 라고 의문부호를 붙을 것이다.
 그러나 새천년이 도래했다고 해서 갑자기 새로운 해가 떠오르는 것이 아니듯이, 또한 나타나 있던 미술운동이 어느날 갑자기 자취를 감추는 일은 적어도 현대미술사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미술이 패션처럼 유행하는 물결에 휩싸이거나 침몰 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시대든지 그 시대를 가르는 흐름이나 주된 경향은 있어 왔다. 세대가 바뀌면서 그 사회의 풍속도가 변하듯이, 패션이 사회 전체의 분위기를 적절하게 반영하면서 유행을 이끌어가듯이 현대미술의 흐름 또한 예외가 아니다.

 21세기 현대미술은 우선 형식적인 측면에서 ‘시각미술의 혁명’이라 불리는 이마쥬(Image)의 독무대가 되어가고 있음을 예감한다. 대다수의 설치작품이나 오브제 또는 사진 작품들이 이마쥬의 차용이나 도입을 전면적으로 보여주고 있음이 이를 말해준다. 강렬한 시각적 메세지를 전하고자 하는 경우의 화면은 거의 예외없이 특수한 영상물들을 기초로 한 이마쥬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이점에서 비디오 아트 혹은 디지털 아트는 명백히 21세기를 위한 위대한 하나의 미술이 되고 있다. 우리가 우려를 하든, 환영을 하든 오늘날 '디지털 아트는 시각혁명의 꽃'이라 불릴 만큼 표현에 관한 승리로 벌써부터 우리들 곁에 와 있다. 모든 기술적인 혁명이 전 분야에서 벌떼처럼 일어나는 사회에서 당연히 21세기 예술이 디지털화 되고 각종 미디어가 아트라는 개념 속에 뒤섞이고 있음은 금세기 미술사의 가장 큰 변혁이 되고 있는 것이다.

 심영철의 작업은 이러한 21세기 미술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테크놀로지가 전시 공간을 화려하게 물들임으로써 현대예술과 테크놀로지가 만나는 ‘제 3의 예술’로 폭발적으로 위치하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유행이 전혀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행여 테크놀로지만 있고 아트는 없는 것처럼 앙코 없는 찐방이 될까 우려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술에서의 테크놀로지는 진화된 새로운 인류의 꿈으로 해석되고 평가되기에는 예술의 궁극적인 목적과 이상이라는 점에서 많은 숙제를 남기고 있다. 심영철은 이러한 현대미술의 흐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작가이기도 하다. 그러한 작업 속에서 현대미술의 흐름을 늘 가까이 인지해왔으며 이를 위해 그가 90년 중반부터 지속적으로 반복과 검증을 해왔다는 사실은 그래서 그의 작품세계를 조말 할 때 예사스럽지 않다.

 그의 작품에 대한 미술계의 반응은 언제나 종교적인 작품을 분명하게 드러낸다는 점에서 작품발표 때마다 비평가들의 주목을 받아왔다. 전도자로서의 전자정원-그의 대외적인 이미지로 이미 확고하게 굳어지는 종교적인 특별한 주제와 표현형식(주로 늘어놓거나 쌓아놓는)은 그의 작품설치에 핵심을 이루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가 고집스럽게 주장하는 타이틀도 설교처럼 성서를 모티브로 하고 있다. 예술과 종교적인 것과의 관계는 무수한 서양의 미술작품들을 통해서 예술가들이 수없이 보여왔지만 입체적인 경우는 그렇게 흔한 편이 못된다. 그러나 그의 작업은 거의가 종교적인 것에 바쳐질 정도로 모든 작품에 신앙심을 바탕으로 깔고 있다. 그래서 그의 개인전의 역사를 본다는 것은 그의 신앙의 역사를 보는 것과 다르지 않을 정도로 일관화 되어 있다.

 1983년의 ‘빛의 단계적 표상’, 1989년의 ‘JESUS LOVE YOU’, 1990년 ‘인간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에 있다가 어디로 가는가’, 1992년 ‘삶과 죽음을 주관하시니’, 1993년 ‘섭리갈망, 역경’... 등 그의 전시의 공동주제는 하나님의 음성을 전하는 다분히 전도사 같은 면모와 체취를 보여준다. 1994년에 들어가면서 그는 이전에 단편적으로 보여주던 작품세계를 종합하는 커다란 변화를 가져온다. 심영철의 이러한 조형적인 입체물과 네온이 만나는 작품들은 1993년 대전 엑스포에서 개최된 ‘테크노 아트전’에서 처음 ‘전자정원’이란 타이틀로 선보이게 되는데, 그는 이듬해 이 작품으로 우수작가를 선정, 시상하는 토탈미술상(토탈미술관)을 받을 만큼 미술계의 독특한 작업으로 조명을 받았다.

 특히 1994년 현대백화점 쇼우윈도우에 디스플레이 형식으로 공개 발표된 그의 '섭리-일렉트로닉 가든(전자 정원)'은 그의 작품세계 방향에 결정적인 방향을 가름하는 작품으로 크게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이른바 '전자정원'이 그것인데 그는 여기서 보다 구체적으로 버섯을 비롯한 형상들을 종교적인 상징적 이야기로 비유시킨다. 그리스도교 회화의 기본도상인 물고기는 물론 십자가의 다양한 형태들의 인용이 이를 잘 말해준다. 이런 설치작업 속에 일렉트로닉적인 요소는 보다 조형적인 형태와 버섯 등 기하학적 구성들을 만나면서 테크놀로지의 완성된 전형을 갖추게 된다.

 이 시기 그의 네온을 이용한 시각적인 아름다움과 다양한 빛이 뿜어내는 환상성은 더욱 기하학적 도형들과 이상적인 조화를 이루고 있음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그가 이러한 시각적인 형식들을 가져오면서도 모든 예술적 요소들이 종교적인 상징체계를 한시도 떠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심영철의 독창적인 예술의지와 목적이 어디에 있는가를 절대적으로 보여준다.

 전자정원 이후 그는 1995년 마니프에서 발표한 ‘섭리-아름다운 그님', 1996년 '섭리-사랑은 죽음처럼 강하고', '섭리-신화' 등은 그의 이런 전자정원의 완성되고 변화된 새로운 패러다임을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그것은 그가 추구하고 있는 종교성의 의미가 기복적인 것이 아니고 절대적인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예술을 설정해두는 것이었다. 이러한 그의 종교적인 표상이 결집된 세계를 우리는 1997년 '섭리-환란은 인내를...' 의 워커힐미술관의 작품들에서 확인된다.

 이 작품들은 그의 작품의 지층이 어떻게 깊어지며 다양한 재료들과 만나 어떻게 개화되고 있는가를 점진적으로 보여주는 점에서 그의 작품세계를 구명하는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역시 같은 해 '생명 + 평화 + 빛' 이란 홀로그램 작품과 죽산국제예술제의 개막을 겸한 퍼포먼스, 99년 마니프에서 대규모로 선보인 ‘전자정원'에서 그는 풍부한 빛의 활용, 다양한 오브제를 이용하여 테크놀로지가 보여줄 수 있는 환상적인 멋들을 시각적인 메시지로 전환시키는데 성공하고 있다.

 그리하여 그의 이런 작업은 다양성이 부족한 우리 미술계에 '전자정원' 이라는 테마로 테크놀로지와 조형이라는 또 다른 독특한 미술의 지평을 열어 보인 작가로 그를 평가하게 되었다. 세계의 예술은 지금 각종 매스미디어를 통한 디지털 아트의 혁명적인 미술양식들로 설치가 가능한 공간마다 화려하게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파급은 유럽의 예술교육에서도 엿보인다. 기존의 모든 예술영역을 아우르는 조형예술은 물론 시각예술, 테크놀로지에 자연스럽게 결합되는 이미지와 소리 · 음악 · 건축 등이 미래지향적인 새로운 예술개념 속에 들어와 토탈아트로서의 새장을 열어 보인다. 이것은 미술작품이 새로운 방식으로의 존재할 수 있음을 의미하며 수용과 오디오 비쥬얼 등처럼 새롭게 보는 방식에 그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전자정원의 특징-최근 그의 작업 속에 현저하게 보이는 특징 중 하나는 전자정원이 환상적인 아름다움과 환경조형에 대한 가능성이 두드러진다는 점이다. 먼저 그의 전자정원은 다른 작가들에게서 쉽게 볼 수 없는 다양하고 풍부한 이미지들의 조합이 하나의 형상으로 만난다는 것이다.

 그의 이런 특징을 가장 잘 살려내고 있는 '전자정원' 작품을 우리는 코엑스 전시장에서 볼 수 있다. 여기에는 그 특유의 버섯 형태를 변용시킨 직육면체의 형태들이 네온과 다양한 소 오브제들과 잘 결합되어 있다. 그의 예술작품은 특히 환경조형물에 빛난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그 주변환경과의 친화성이 절대적 의미를 갖는 특징이 있다. 특히 신영철의 작업 중 일렉트로닉 가든, 즉 전자정원은 1990년 이후부터 그가 지속적으로 관심을 보여온 심영철의 가장 돋보이는 작품세계에 전부이다. 그의 전자정원에 영상과 이미지들은 좀 더 시각적이고 그 이미지들은 정원에 환상적으로 장식화되고 다양한 빛을 발하는 소프트웨어들이 전자정원 속으로 들어와 마침내 조화를 이루는 '전체로서의 하나' 를 보여준다.

 그의 전자정원에는 식물 대신 불을 발하는 꽃과 네온들이 아른거리는 아름다운 빛깔과 색들이 정원을 수놓는다. 그러나 그의 전자정원은 그저 아름다움만을 드러내는 통상적이고 세속적인 정원이 아니다. 주지하다시피 테크놀로지와 첨단 예술이 만나는 마당이다. 감상자들의 시각을 시시각각 변하게 하며 사람에 의해 움직이는 터치스크린과 감지장치에 의해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조각, 작가의 풍부한 상상력을 보여주는 컴퓨터 영상, 빛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네온, 광섬유와 TV 모니터, 홀로그램 등이 만들어내는 종합예술의 절정을 그는 여러 작품에서 선 보였다.

 특히 그의 홀로그램 작업은 미개척 분야로서 단연 새로운 시각미술의 차원에서 현대미술의 신선함을 가져다 줄 것이다. 그리하여 그의 작업은 말할 것도 없이 21세기 첨단 예술로 일컬어지는 컴퓨터와 디지털 아트의 한 양식을 충실하게 발전시켜 나갈 것이다. 그가 쉬지 않고 멀티미디어를 이용한 디지털 아트의 가능성과 영역을 확장시키고자 하는 욕구에는 이 예술 현상이 현대산업사회 소비사회 그리고 눈으로 보여지는 '눈의 시대' 에 대한 중요성 때문이다. 아마도 작가들의 이런 아이디어 때문에 현대예술은 시각과 청각이 어우러지는 3차원의 입체적인 비쥬얼 회화시대로 급속하게 진입해왔는지도 모른다. 이 모든 것이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에서 연유된 것은 두말할 여지가 없을 것이다.

 심영철의 전자정원의 프로젝트-내용처럼 그가 연출해내는 공간 꾸미기는 어느 한 부분도 우리의 눈으로 하여금 심심하게 내버려 놓지 않는다. 꾸미기의 표현방법도 인스탈레이션과 조각 부조 등으로 다양하게 꾸며낸다. 주목할 또 하나는 작가가 편집 제작한 디지털 영상 이미지들이 빚어낼 다양한 이미지의 반복과 중첩, 광고적 효과, 뮤직비디오를 보는 듯한 색다른 즐거움을 그가 스스로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가 보여주는 전자정원의 구성은 미디어 아티스트인 제프리 쇼(Jeffrey Shaw)의 작업처럼 기술이 상상력과 결합된다는 점에서 그의 작업은 현대미술을 떠나는 듯한 인상을 준다. 이런 구상은 그가 오랫동안 열정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작업했던 그의 풍부한 경험에서 비롯 된 것으로 주목을 끌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그가 의도하는 후기 산업사회에 삶의 양상을 예술로서 끌어들이는 그의 번득이는 의미에 시각적인 공명감을 더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예술가들의 자유로운 표현과 상상력을 창조적인 것으로 바꿔 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특이한 것은 그가 행하는 예술이 스스로를 위하기 보다는 다른 사람을 위해 제작한다는 점이다.

 이 만남은 무엇인가? 사실 이것으로 연은 끝나는 것이 아니다. 인간과 자연들이 그리고 테크놀로지화 된 것들과 어우러져 하나의 예술로 다시 태어나는 것에 있다. 그래서 심영철의 전자정원은 일방적으로 특정 공간에 놓여지는 것으로 의무를 다하는 미술이 아니라 하나의 공간에 살아있는 상호 소통하는 것일 때야말로 그의 예술의 미래가 주어진다.

 이제 그의 미술은 하나의 현대미술로서 우리시대 미술의 비젼이어야 할 필요가 있다. 심영철이 명백하게 보여주는 전자정원의 미술언어는 사회적 붐의 현상을 넘어 예술의 새로운 미디어 세계인 하나의 테크놀로지 아트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그는 테크놀로지를 이용해 문명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테크놀로지를 이용해 사랑과 평화의 복음을 전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그는 테크노피아의 전도사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문화의 위기 또는 탈문화 현상을 거론한다. 사실은 우리가 가장 주목하고 눈여겨 볼 부분은 그가 오랫동안 작품 속에서 지향하고 있는 종교성이다. 화가에게 있어 종교성이란, 예술철학자인 조요한씨는 기독교 예술은 기독교를 작품 속에 집어 넣는데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고, 한 기독교인으로서 작품을 제작하는 일에서 이루어진다"고 한 것처럼 "그의 예술 속에 담겨 있는 종교성은 모든 영광과 은총을 절대자인 신에게 향하고 있다는 것이다"라고 진단했다.

 이제 오랫동안 종교적인 세계에 심취한 심영철의 전자정원은 절대자의 계시를 예술을 통해서 구현해내는 종교 예술의 절대 경지에 다다르고 있다. 특히 그의 언어가 인간이 아니 한 예술가가 절대자를 향한 끊임없는 사람의 표현, 즉 사랑의 메시지라는 점에서 그렇다면 작가가 우리가 그의 예술세계의 이면에 있는 한 예술가의 신선한 영혼의 메세지가 그의 일렉트로닉 가든에 숨쉬고 있다는 것 또한 간과 해서는 안된다.

 그 또한 단순한 예술로만 강조되는 테크놀로지와의 만남 또한 보다 과학적인 예술과 기술 과학과의 만남이 있을 때 그의 전자정원의 예술세계도 폭넓어질 것이다. 그에게 있어 전자정원의 의미는 무엇일까. 우리는 그의 절대자를 향한 사랑의 메시지를 듣는다. 그 메시지는 사랑과 평화를 위한 기도이다. 우리는 인간의 세계에서 그 기도와 인간이 만나는 공간이 전자정원이다. 이 전자정원에서 그는 우리는 그가 극명하게 밝히고 있는 그의 자서전적 작품관의 발언을 여기에서 다시 한번 확인한다.

 “사랑이라는 주제는 언제나 나의 예술에 있어서 그 바탕을 이루는 것으로, 신의 섭리요, 만남의 섭리이다. 인간과 신이 만나는 것 역시 사랑을 통해서만이 가능하고 이러한 섭리는 또 자연을 다스리며 인간과 세계를 통합한다."


김종근/홍익대 교수, 미술평론가 


출처 : 2001. 06 심영철 작품집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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