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영철의 공공조각 인상기 - 조영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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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영철의 공공조각 인상기
나는 가수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나는 화가로도 불리게 됐다. 현대미술을 좋아하다보니까 그렇게 됐다. 분명히 말하지만 나는 미술평론가가 아니다. 왜 이런 얘기부터 하냐하면 내가 지금부터 심영철의 작품활동에 관한 글을 한편 써야 하는데 행여 가수가 무슨 미술 비평이냐 하고 의아해 하실 분들께 이건 미술비평이 아니고 심영철의 작품을 바라본 인상기 정도라는 걸 미리 양해 받으려는 것이다. 우선 가수 조영남이가 조각가 심영철을 어떻게 만나서 알게 되었을까. 몇 년 전 나는 늘그막에 운동 삼아 골프를 배우게 되었고 그때 나한테 개인레슨을 해주던 노처녀 스승님이 바로 심영철과 여고 동기동창생이어서 내가 미술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자연스럽게 접선을 시켜주었던 것이다.
내가 5년 전에 처음 본 심영철은 너무 예뻤다. 이렇게 말하는 건 전적으로 나의 못된 편견 탓이다. 조각가라면 나는 돌덩어리 앞에서 앞치마 차림에 망치를 손에 쥐고 인상을 팍 쓰는 여자로 상상했기 때문이다. 부모가 물려준 대로 서구적인 예쁜 모습은 그렇다 치더라도 조각가에겐 반드시 남다른 강직함이 있어야 한다는 건 꼭 못된 편견만은 아니다. 왜냐하면 입체조각이란 기본적으로 돌이나 쇠붙이를 다뤄야하는 특수 분야이기 때문이다.
나는 저렇게 예쁜 몸매에 조각가의 강직함은 어디에 숨었을까 공상을 해봤는데 그런 공상도 그냥 그 자리에서 해체되어 버렸다. 어느 날 날더러 자기가 강의하는 수원대학 미술학부 학생들한테 현대미술 특강을 해달라는 것이었다. 이 나라의 사회정서상 어지간한 강직함이 아니면 이런 부탁은 하기조차 힘들다. '한국가요 100년사'나 '대중음악의 어제와 오늘 같은 서브젝트로 강의를 부탁했으면 별 문제가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거긴 미술전공 분야를 공부하는 대학학부다. 검증도 안된 가수 출신의 아마추어 화가한테 미술학 강의를 부탁한다는 건 학교당국이나 학생들한테 비난 받을 소지가 너무나 클 수 있다. 그러나 그런 미묘한 조건 속에서도 심영철 교수가 밀어붙인 화가 조영남과 학생들 간의 미술에 관한 강의와 토론은 정녕 즐겁고 진지하게 진행되었다. 심영철의 조각가다운 강직함 덕분이었다.
내가 사전정보나 편견 없이 교수의 작품을 처음 본 건 용인의 어느 골프장 앞마당에서였다. 초록색 잘 정돈된 잔디밭에 송이버섯을 연상시키는 흰색의 조형물들이 사람의 허리에 찰 만큼 나지막이 일정부분에 놓여있는 것이었다. 재질은 그것이 돌인지 아니면 특수재질인지 알 수 없었으나 일단 초록 잔디 빛깔과 아이보리 버섯 색깔은 너무도 따뜻하고 포근하게 잘 어울렸다. 원래 버섯은 작은 생물체다. 그러나 머리와 몸통의 이분법적인 측면과 둥근 기둥, 그리고 역시 둥그런 초가지붕을 닮은 버섯은 그 자체만으로도 브랑쿠시나 로댕 이후의 현대조각에 딱 들어맞는 조형물이 아니던가.
조각가의 사명이라는 게 무언가. 풀숲에 솟아나 있는 버섯 하나를 그냥 아무렇게나 보고 말아버리는 사람들에게 조각가가 그 버섯을 집어 들고 "여러분! 이것은 신이 손수 만든 예술품입니다"라고 하면서 새롭게 인식시켜주는 것이 조각가가 해야 하는 일이 아니던가. 심영철은 그 직분을 충분히 잘 해냈다. 그는 자칫 지나칠 수 있는 버섯의 조형을 사람들이 최소한 한번은 다시 쳐다보고 지나칠 수 있도록 버섯 형태를 확대시켰다. 그래서 그것들을 어린아이들이 유희를 하듯 눕히고 세우고 걸쳐 놓았다. 조각이라는 게 그렇다. 보면 볼수록 좋아 보이고 정이 들면 그게 좋은 조각이다.
대한민국의 골프장은 조각을 가장 많이 소화하는 곳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비교적 여유 있는 사람들이 출입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거기 가면 각종 조각을 공짜로 구경할 수가 있다. 그 중에서도 심영철의 버섯 형태의 조각 작품들은 골프장이라는 특수 환경을 고려할 때도 여러 조각품들 중에 압권이었다.
그 이후로 내가 보게 되는 심영철의 작품들은 실로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좋게 말하면 단순한 버섯 형태에서 세 단계, 네 단계나 뛰어 넘은 것처럼 보이는 복잡한 형태의 조형물들과 전혀 예상치 못했던 최첨단 전기 전자 기술을 동원한 얼핏 휘황찬란한 일련의 작품들을 보면서 나는 엉뚱하게도, 아! 어쩌면 사람과 애정에 대한 욕구 불만일지도 모른다는 상념에 사로잡힐 정도로 각기 다른 장르의 작품들을 연속적으로 제시해 놓았다.
그녀는 일정한 패턴 없이 '모뉴멘탈 가든' 같은 큰 틀을 상정해 놓고 각기 다른 조형물들을 창조해서 조합시키는 방법을 택했다. 다양한 형태의 개척은 조각가가 짊어져야 하는 임무이다. 그러나 그녀의 경우는 그녀 한 사람이 수십 명의 조각가가 개척해야 할 것을 혼자서 다 해내야 한다는 강박관념까지 엿보일 정도로 혼신을 다해서 개척해 나갔다.
그런 때에 흔히 부딪치는 문제는 작가 고유의 정체성이다. 너무 많은 종류의 조형을 빚어내다 보면 자칫 작가의 고유성에서 멀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심영철은 아직 젊다. 앞으로 그가 추구해야 할 것은 고유성에 관한 문제다. 쉽게 말해서 심영철하면 누구에게나 떠오르는 작품이나 조형미를 창조해내야 한다. 역사적으로 소위 성공했다는 조각가들한테는 대대로 후손들에게 기억되는 그들만의 영혼과 향기로 빚어진 고유성과 대표성 있는 작품이 존재한다. 로댕이나 권진규한테는 인물이나 두상, 브랑쿠시한테는 소박한 기둥, 그리고 스타치올리한테는 긴 칼이던가 반달조형이 떠오르듯이 말이다.
그런 점에서 조각가나 일반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도 우리네 대중가요 가수와 입장이 매우 비슷하다. 우리 가수들이 대중으로부터 "너의 히트곡이 무엇이냐”를 제일 먼저 추궁 당하듯이 조각가나 화가도 똑같은 모양으로 “너의 히트 조각 작품이 뭐냐' 혹은 '너의 히트 그림이 뭐냐"는 추궁을 받게 된다는 점에서 말이다. 박수근의 소박한 농촌풍경, 김환기의 항아리나 황새 같은 동양적 소재, 김창열의 물방울, 백남준의 TV 쌓아올리기가 그런 것들이다.
심영철은 그 문제에서 별로 걱정할 일이 없다. 누가 뭐래도 버섯 작품 그것만으로도 독창적 조형미를 확보해 놓고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버섯은 충분하게 특이할 뿐더러 관능적이며 섹시미까지 넘쳐나기 때문이다. 관능과 섹시는 이 시대가 요구하는 최상의 덕목이다. 내 얘기는 버섯조형에 승산이 있다는 것이다.
버섯 조형이 아니더라도 그녀는 조각가로서 해야 하는 임무를 다했다. 그녀가 이미 제작해 놓은 예술성 위주의 실외 조각품들, 공공 건물에 붙박이로 설치한 대형 조각품들, 특히 그녀가 심혈을 기울이는 환경 친화적인 조각 작품을 둘러보면 그녀한테 더 이상 무엇을 요구할 수 없음을 알게 된다.
나는 이미 2년 전에 심영철의 작품을 <월간미술>의 지면을 통해 높이 평가한 바 있다. 서울 삼성동 무역센터 코엑스에 가보면 여러 수십 명의 조각가들로부터 의뢰 받은 조각품들이 사방 곳곳에 영구 전시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나는 심영철의 <아름다운 그 님>을 본체 건물과 가장 잘 어울리는 작품으로 꼽은 적이 있다.
우선 건물이 온통 철과 유리로 되어 있어 심영철의 스테인리스 스틸 재질의 이 은빛 조각품은 거의 유일하게 한 몸처럼 어울려 보였다. 여러 개의 원통을 구부리는 조형이었지만 작가는 각 원통의 높이와 두께를 달리했고 곡선과 곡선에서 우러나오는 면, 부피와 형태까지 각각 다른 수치가 발생하도록 처리했다. 미세한 직선과 미세한 곡선의 어우러짐은 그것을 바라보는 관객으로 하여금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쥐게 하는 역동성, 특히 부드러움 속에서 배어나오는 미묘한 역동성을 느끼게 했다. 대한민국의 모토로 자리 잡은 다이내믹, 바로 그 다이내믹이 심영철의 작품에 스며들어 있었다는 얘기다.
또한 심영철의 작품 <전자정원>은 사실상 심영철의 조형 미술세계를 대표해주는 작품으로 손색이 없다. 왜냐하면 심영철의 다양한 작품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기 때문이다. 우선 낮에도 밤에도 조형물이 빛을 발한다는 차원에서 높은 가치를 지닌다. 자연미까지도 능가할 수 있는 오색찬란한 전자 꽃밭 사이에 우뚝 서있는 버섯 형태의 조형물은 구체적으로는 서있는 자세이지만 그것들의 몸체가 하나 같이 곡선을 그리며 서있기 때문에 움직이는 용솟음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찬란하고 눈부시게 용솟음치는 그 무엇, 이 풍진 세상살이에 우리는 얼마나 용솟음치는 바로 그 무엇을 열망하며 살아왔던가! 만일 그 조형물들이 머리 부분을 서서히 움직인다면 그것은 이 시대를 대표하는 대한민국 여류조각사를 마감하는 작품으로 길이 남을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심영철은 나와 10년 가까이 친분을 유지해온 미학적 친구이며 동료이다. 이제 심영철은 자신이 해야 하는 임무를 이미 완수해 냈다. 이제 심영철이 해야 할 일은 다시 아름다운 여자로 남는 것이다. 이름처럼 남자 영철이가 아닌 여자 영철로 말이다. 앞치마 두르고 망치 들고 용접기 들고 왔다갔다 하는 건 타고난 숙명이기 때문에 좋다. 대한민국 천지를 그녀의 작품으로 온통 채워버리고 싶어 하는 야망도 좋다. 조각가로 나선 이상 그만한 야심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심영철의 끝없는 야망을 믿는다. 그러나 한 조각가가 이 지구상에 도대체 몇 점의 변변한 조각을 남긴다고 저토록 인상만 벅벅 쓰고 신경질만 버럭버럭 내면서 작업에만 매달려야 한단 말인가.
그래서 나는 며칠 전 8월의 막바지 여름 끝 문턱에 내 글을 써볼 테니 우리집에 와서 차 한잔을 마시자는 조건을 내밀었다. 우리는 오랜만에 여러 식구가 둘러앉아서 오후 한나절을 온통 낄낄대면서 보냈다. 나는 세상을 더 오래 산 선배로서 그녀에게 예술보다도 삶이 중요하다는 걸 일깨워주고 싶었다. 종교보다도 오늘 하루 친구들과 택도 없는 예술 · 종교 · 철학 집어치우고 그냥 낄낄대며 하루를 재밌게 보내는 게 훨씬 중요하다는 걸 일깨워주고 싶었다. 예술이나 종교에 대한 사랑보다도 오히려 옆에 있는 사람, 심지어는 강아지 한 마리한테라도 보낼 수 있고 나눌 수 있는 사랑이 더 소중하다는 걸 일깨워주고 싶었다. 사랑할 줄 아는 마음이 중요한 이유는 이 세상의 모든 훌륭한 작품은 바로 작가 자신의 사랑과 열정에서 나온다는 걸 익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조영남 (가수·화가)
(주)아트앤랜드스케입연구소
2006년 석주미술상 수상 기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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