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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트릭스 가든 영혼의 소리, 빛의 꽃으로 피어나는... - 최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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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746회 작성일 22-06-05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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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트릭스 가든(Matrix Garden)

영혼의 소리, 빛의 꽃으로 피어나는...  



콘택트 


인간이 이 세상이 무엇으로 이루어졌는가에 대한 의구심을 갖기 시작했을 때는 언제부터였을까? 수백 년, 수천 년, 수만 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생존을 위한 경험의 축적과 언어로부터 비롯된 지식의 체계화를 통해 밝음과 어두움, 따뜻함과 차가움, 안과 밖, 생성과 소멸, 인간과 신, 성과 속, 감성과 이성, 진화와 창조 등의 개념 등이 신화와 전설, 종교와 철학, 예술과 과학의 틀을 통해 무수히 도출되었지만 과연 인간은 이 같은 질문에 꼭 맞는 정답을 구했을까? 이 세계 혹은 이 우주가 어떻게 무엇으로 형성되었는지에 대해, 역사 이전 혹은 역사 이후 수많은 마법사와 연금술사들, 종교적 지도자들, 천재적 과학자들이 암호와 비의, 상징으로 그것을 규명하려 하였지만 과연 그들의 수고는 어디까지 이를 수 있었을까? 결코 완전한 대답을 구하지 못할 것이라는 조바심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금기의 영역에 기어코 도달하고야 말거라는 인간의 열망이 뒤섞여 인류의 문명과 문화가 생성되어 온 것이 틀림없고 오늘날에도 그런 노력들이 지속되어 세상이 미래를 향해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겠지만 말이다. 

천체물리학자였던 칼 세이건(Carl Edward Sagan 1934-1996)은 1985년에 <콘택트(Contact)>라는 소설을 썼다. 이미 그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가져다 준 책, <코스모스(Cosmos, 1980)>로 우주의 탄생과 천체의 특성, 지구와 우주의 관계를 명쾌하게 서술한 그였지만 과학적 서술만으로는 무언가 부족했는지 세이건은 <콘택트>에서 여주인공 엘리 애로웨이(Ellie Arroway)를 통해 인간과 우주의 관계에 대해 못 다한 그의 생각과 이야기를 대중들과 나누고 싶어 했다. 그가 소설의 에필로그 부분에서 인간과 우주의 관계를 예술가의 서명에 비유하여 묘사한 아래의 대목은 매우 흥미롭다. 


“ 그건 이미 여기 있었다. 모든 것 안에 존재하고 있었다. 그걸 발견하기 위해 자기가 사는 행성을 떠날 필요는 없다. 이 우주의 구조 속에, 물질의 본성 속에 마치 위대한 예술작품이 그렇듯이 조그마하게 예술가의 서명이 담겨 있는 것이다. 인류와 신, 악마, 터널을 관리하는 존재와 건설한 사람들을 넘어 우주를 앞서는 지식이 존재하는 것이다.”


인간의 한계를 넘어 우주를 향한 줄기찬 탐구와 집요한 노력이 결국은 우주의 정체를 규명해낼 것이고 그 과정에서 다른 무엇보다 ‘인간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될 것이라는 메시지가 이 소설의 주제이다. 이 주제는 역으로 평범한 사람이든 비범한 사람이든, 그가 과학자이든 예술가이든 인간과 우주에 대한 근원적 성찰을 이루기 위해서는 다른 무엇보다 자신의 존재에 대해 스스로 신뢰하고 진정한 예술이 그러하듯 독창적 자각이 바탕이 되어야 함을 이야기 하고 있다. 그것을 세이건은 ‘예술가의 서명’(Artist's Signature)이라 표현한 것이다.

  

심영철은 예술가로서 인간과 종교, 우주, 생명, 환경과 같은 큰 주제를 다뤄 온 작가이다. 그리고 미디어 매체를 적극 활용한 실험적 시도와 건축적이라고 느껴질 만큼의 큰 스케일의 작업으로 미술계의 인정을 받으며 성장해 온 작가이기도 하다. 자타가 공인하듯이 심영철 작업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일렉트로닉 가든(Electronic Garden)> 일명 전자정원은 1993년 대전 엑스포를 계기로 대중들에게 처음으로 소개되었다. 물, 불, 돌, 흙, 소금 등 자연물질과 홀로그램, 비디오, 컴퓨터 그래픽, 터치스크린 등 전자매체를 결합하면서, 미디어 아트의 본격적인 출현을 알렸다. 미디어를 적극 활용하는 방식은 작가 자신에게도 보다 폭넓은 표현의 영역을 개척할 수 있는 자양분이 되었다. 심영철은 자신의 기독교적 신앙심을 전자매체를 통해 예술적으로 표현하는 많은 시도를 했다. 종종 그의 작품에서 나무기둥, 꽃잎, 돌, 새집 등의 자연적 소재는 모니터, 네온, 광섬유, 홀로그램 등의 전기, 전자 매체와 어우러져 파격적이고 현란한 색채와 빛으로 둘러싸인 새로운 조형성을 보여주었다. 이런 형식적 특성은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를 담은 에덴동산 혹은 영원한 생명이 숨 쉬는 에너지의 원천 혹은 신의 영광이 광휘로 빛나는 제단, 아니면 우주 저편의 미지의 세계로 연결되었다. 작가는 신앙심에 기반 하여 자신의 기도로부터 울려 퍼지는 영혼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이를 작품으로 형상화 하는 것에 모든 열정을 쏟아 부어 왔다.  

  

이번 심영철의 개인전에서 우리는 마치 <콘택트>의 여주인공이 우주 어딘가에 있을지 모르는 미지의 생명체를 감지하기 위해 그의 모든 감각과 지적 능력을 집중시키려 오랜 시간 실험실에서 자신을 희생했던 것과 같은 작가의 모습과 마주할 수 있다.


“엘리는 늘 그랬듯 끊임없이 이어지는 불규칙한 소리들을 들었다. 언젠가는 카시오페이아자리의 AC+79 3888별 부근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가 어렴풋이 들리다 안 들리다 하는 노래 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정말 무언가 들은 것인지 확신할 수가 없었다. 그 별은 당시 해왕성 궤도 부근에 위치하고 있던 보이저 1호가 궁극적으로 향하게 될 목적지였다. 그 우주선 안에는 인사말과 노래들이 담긴 축음기 음반이 실려 있었다. 어쩌면 외계 생명체는 자신들의 노래를 광속으로 보내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작가의 <일렉트로닉 가든(Electronic Garden)>, <모뉴멘탈 가든(Monumental Garden)>, <시크릿 가든(Secret Garden)> 등 이전의 작업에서 보여 지던 다소 불안정하고 과도한 매체의 사용이나 고조된 표현의 방식은 마치 엘리가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불확실한 외계 존재와의 교신을 위해 무모할 정도의 기다림으로 자신을 단련시킨 것과 비슷하다. 예술가인 이 작가의 기다림이 수많은 매체실험의 시간들로 채워져 왔음을 그래서 그 긴 인내의 끝에 어떤 절정의 순간을 맞이하고 있음을 이번 전시는 매우 침착하면서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콘택트>라는 소설의 제목이 상징하듯이 인간과 우주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순간, 그 접점에서 ‘인간’과 ‘인간의 본질’에 대한 성찰이 이루어지듯이 이전 작업에서 온갖 매체를 사용해 자신의 주제의식을 탐구해온 이 작가의 노력이 어느 순간에 인간의 본질을 표현하려는 '예술의 근원'과 만나고 있기 때문이다. 

   

"예술은 불확실성과의 싸움이다. 매순간 묻고 또 물음으로써 비로소 답을 찾아간다. 보이지 않은 진실과 보기 싫어하는 아집, 볼 수 없는 고통과 보일 수 없는 나약함. 예술가는 그 불확실한 경계에 서서 무수한 꿈의 갈피를 뒤적이며, 무한한 가능성을 또 한 번의 꿈을 통해 품는다.” 


위의 작가노트에서 우리는 심영철의 작업 역시 인간과 예술의 본질을 탐색하기 위한 부단한 탐색과 실험의 과정이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된다. 이번 전시의 주제는 <매트릭스 가든>으로 설정되었다. 그간 작가의 오랜 작업 활동에서 축적된 예술적 체험과 감각이 인간, 우주, 생명 등의 원대한 주제의식과 만나 수많은 교차점을 경유하며 예측의 한계를 훨씬 뛰어 넘는 확산된 조형 의식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매트릭스 가든(Matrix Garden)


“콘셉트를 바꾼 것이 아니라 정원이 계속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창조물을 믿지만 예술 활동에 있어서만은 진화의 개념에 찬성한다. 생물이 주위환경에 적합한 기능이나 구조로 변해가듯 예술 또한 점진적인 발전을 이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게 있어 예술의 진화는 그런 의미를 지닌다. 한곳에 머무르지 않고 계속해서 변화하며 어떤 의미로든 발전하는 것이다.”  

   

이 언급처럼 이전 <일렉트로닉 가든>, <모뉴멘탈 가든>, <시크릿 가든>의 진화된 상태로서 <매트릭스 가든>은 새로운 발전적 국면을 암시한다. 흔히 이해하듯이 사이버 공간 안에서 종축과 횡축의 무수한 조합에 의해 만들어지는 허구적 현실이 매트릭스 구조이다.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에서 가장 빈번히 그리고 중심적으로 언급되는 보드리야르의 시뮬라크르와 시뮬라시옹의 개념은 실재가 실재하는 것이 아닌 파생실재로 전환되는 작업이 시뮬라시옹이고, 모든 실재의 인위적 대체물이 시뮬라크르이며 현대인은 가상실재인 시뮬라크르의 미혹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인데 이 개념은 그대로 1999년 앤디 워쇼스키와 래리 워쇼스키가 감독한 <매트릭스> 영화에서 영상화 되었다. ‘무엇이 진짜 현실이고 무엇이 가상현실인가?’라는 영화의 주제는 ‘과연 매트릭스 세계의 진정한 창조자는 누구인가?’라는 의미심장한 질문과 함께 현대사회에서 현실과 허구의 경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하는 강력한 반향을 일으켰다. 이러한 철학적 인식은 동양의 노장사상에 등장하는 <호접몽(胡蝶夢)>의 비유와 관련지어 설명할 수 있다. <장자>의 ‘제물론(齊物論)’편에 나오는 이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전에 장주(莊周)는 꿈에 나비가 되었다. 훨훨 나는 것이 분명한 나비였다. 스스로 즐겁고 뜻대로라 장주인 줄을 알지 못했다. 그러다가 조금 뒤에 문득 깨어보니 분명히 장주였다. 장주가 꿈에 나비가 된것인지 나비가 꿈에 장주가 된 것인지를 알지 못하였다.”   


<호접몽>의 비유는 절대인식을 위해서는 일체의 존재를 하나로 봐야한다는 입장에 있는 노장사상의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철학을 핵심적으로 제시한다. 물아의 구별이 없는 만물일체의 세계에서는 꿈과 현실의 구별이 다 부질없는 짓이라는 사상을 전한다. 인간과 삶의 문제가 인간의 사고와 인식의 종축과 횡축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더 심오한 다른 차원으로 무한히 확대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심영철은 이번 전시에서 <매트릭스 가든>이라는 주제를 정하였다. 조형개념의 전개와 진행이 보다 종횡무진하게 진행됨을 상징하는 매트릭스 개념은 여러 작품을 통해 이전의 작품보다 훨씬 개방적으로 열린 구조를 보여준다. 

  

이번 전시에서 보게 되는 주요 작품의 시발점은 <사운드 오브 스케이프(Sound of Scape)>이다. 이 작품에서 작가는 하나의 크기가 손에 쥐어질만한 정도의 매끈한 스테인레스 구인 ‘구슬’을 사용했다. 이것을 사용하면서 작가는 ‘미니멀리즘화 되어가는 현대사회를 대변할만한 상징적 소재’로서 구슬의 형태와 재질, 은빛의 색채에 주목하였고 구슬은 ‘소우주’를 상징할 만한 의미도 갖게 되었다. 또한 구슬은 디지털시대의 무한히 가능한 복제의 개념을 함축하고 있는 '단위'를 상징하는 것이기도 한다. 마치 공중전화 박스처럼 한 사람이 들어가 움직일 수 있을 정도의 규모를 가진 직육면체의 구조물인 이 작품에서 심영철은 구슬을 꿰어 만든 경계선으로 작품의 안과 밖을 나누었고 내부의 바닥에는 거울을 깔아 보다 확장된 공간감을 부여하였으며 천정의 중심에는 바벨탑을 거꾸로 매단 듯한 구조물을 설치했다. 호기심 많은 관람객이라면 당연히 구슬의 벽의 뚫고 구조물의 안쪽으로 진입하여 시각, 청각, 촉각적인 감각이 모두 동원되는 통합적 체험을 할 수 있다. 관람객은 자신의 모습뿐만 아니라 주변의 여러 물체를 반사시키는 매끈한 구슬의 표면도 볼 수 있고 벽을 뚫고 지나갈 때의 부드러우면서도 차가운 느낌도 간직하고, 구슬과 구슬이 부딪치면서 내는 맑고 깨끗한 소리도 들을 수 있다. 구조물의 위쪽에서 아래쪽으로 드리워진 구슬펜스는 물질과 정신, 내포(內包)과 외연(外延), 차안(此岸) 피안(彼岸) 등을 가르는 경계이기도 하다. 관람객들은 자신의 몸을 직접 특별한 공간 안에 집어넣음으로써 작게는 ‘세계에 속한 자신’을 크게는 ‘우주에 속한 자신’을 인식할 수 있다. 


<사운드 오브 스케이프>에서 활용되었던 구슬을 더욱 적극적으로 이번 한국미술관에서의 개인전에서 활용하고 있는 심영철은 구슬을 기본 단위로 사용하면서 매우 함축적인 의미를 지니는 다양한 조형물들을 탄생시켰다. 일견하였을 때 어떤 것들은 높은 곳에서 시원한 물줄기를 떨어뜨리는 폭포처럼 보이기도 하고 다른 어떤 것들은 양 날개를 펼치며 날아가는 비상하는 물체처럼 보이며 심지어는 사랑스러운 꽃잎으로도 보인다. 이 각각의 창조물들은 전시의 주제이면서 타이틀이기도 한 <매트릭스 가든>을 가득 채우고 있다. 종축과 횡축을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는 매트릭스의 구조 속에서 삶과 죽음, 사랑과 갈등, 욕망과 신앙 사이의 경계가 무너지거나 통합되면서 관람객을 작품 속으로 끌어드린다. 이번 전시에 출품된 작품들 중 상당수가 단지 시각적인 감상만을 유도하는 작품이 아니라 관람객이 작품이 객체가 되기도 하고 주체가 되기도 하면서 그들로 하여금 스스로 예술적 공감대를 형성하게 한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이번 전시의 진화된 양상은 심영철이 다루고자 하는 인간과 인간을 둘러싼 심오한 주제의식이 이제는 단지 작가 자신 속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좀 더 다른 차원으로 발전할 수 있음을 그대로 보여준다. 


<매트릭스 가든>은 기승전결의 구조로 전개된다. 우선 작가는 한국미술관으로 들어서는 마당에 매트릭스의 구조로 들어감을 암시하는 일종의 게이트를 설치하였다. 운반용 콘테이너 박스를 예술작품으로 개조한 이 작품은 관람객들을 새로운 세계로 실어 나르는 일종의 운반선 역할을 하고 있다. 운반선의 표피 역시 매우 매끄럽고 세련되어 마치 우주를 항해하는 우주선처럼 보인다. 그러나 내부로 들어가게 되면 관람객들은 일종의 예술이 잉태되는 모태적 공간에 자신이 놓여 있음을 문뜩 깨닫게 되는데, 이러한 상황적 체험을 통해 심영철 예술의 근원을 제시한다. 구슬과 LED 조명 등으로 구성된 컨테이너에서 관람객들은 구슬을 직접 건드려 보거나 펜스 안과 밖의 풍경을 비교해 보면서 다음 단계에서 전개될 재미있는 무엇인가에 대한 기대를 갖게 된다. 더욱이 작가는 컨테이너 천장을 둘러 돌아나가는 파이프관을 설치하여 관람객들이 함께 온 사람들과 떨어진 곳에서도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작품을 구상했다. 이런 장치는 다름 아니라 이번 전시에서 ‘소통’의 문제가 중요하게 다뤄질 것이라는 예상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전시장 전체를 활용한 작가는 전시의 전반부에서는 이전 작품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제1, 2전시장에서는 <모뉴멘탈 가든>시리즈에서 등장했던 준보석을 활용한 꽃 형상의 조형물들이 등장하는데 이 조형물들은 창세이전의 혼돈, 꿈틀거리는 인간적 욕망 등을 묘사한다. 이 부분을 지나면 관람객은 검은 원형의 바탕위에 문자 혹은 기호로 보이는 네온관을 얹어 놓은 작품을 만나게 되는데 이 작품은 작가의 신앙적 고백을 담은 증표 역할을 하고 있다. 곧바로 이것들은 홀로그램과 플라즈마 기법을 활용한 환상적 이미지를 담고 있는 또 다른 원형 조형물로 이어지며 창세의 오묘한 조화를 환상적으로 보여준다. 이어서 작가의 종교적 신념을 상징하는 눈의 형상을 지닌 조형물 역시 등장하는데 이는 ‘영혼의 눈’을 상징하며 작가의 눈이 진실을 향해 나아가고 있음을 암시한다. 제3전시장에서는 일종의 신전이 연출되고 있다. 이 작품 역시 <모뉴멘탈 가든>시리즈가 재해석된 것으로 횃불이 불타오르듯이 어떤 어두움도 두려워하지 않는 굳건한 신앙으로 세워진 빛의 교회를 비유한다.

현란한 오색의 횃불을 얹은 유리기둥들은 조작된 조명기법에 의해 투명한 하나의 빛으로 통합되면서 인간적인 모든 고통과 한계를 한 순간에 승화시키는 듯한 극적 체험을 선사한다.


전시의 절정은 제4전시장에서 만날 수 있다. 작가는 이번 전시의 출품작 중 가장 핵심적이고 장대한 드라마를 한 작품에 집중시켰다. 천정으로부터 아래쪽으로 흘러내리듯이 설치된 <빛의 꽃>이라는 작품에서 작가는 폭포처럼 흘러내리며 일순 최고조로 고양된 어떤 정신적 차원을 상징하는 기념비적 조형물을 완성시켰다. 은색의 구슬을 하나씩 연결시켜 마치 포도송이처럼 보이기도 하는 이 작품에서 작가는 자신이 겪어야 했던 모든 고통들의 승화를 꿈꾸는 듯이 표현하고 있다. 구슬들 사이사이에서는 광섬유가 촉수처럼 뻗어 나와 역시 현란한 빛과 투병한 빛을 번갈아 발산하며 ‘영혼의 정화’를 유도한다. 제4전시장에서의 절정의 상태는 제5전시장의 구슬을 천장에서 하나씩 매달아 늘어뜨린 날개를 연상시키는 작품에서 진정의 국면으로 접어든다. 관람객들은 날개의 아래쪽에 마련된 거울바닥에 누워 날개를 바라보면서 자신의 존재를 반추해 보는 명상의 시간을 갖는다. 다시 한번 인간의 본질에 대해 사유하는 정지된 시간과 공간 속에 자신의 몸을 있는 그대로의 순수의 상태로 놓아 보는 것이다. 



기하학


전시의 마지막 부분에서 관람객들은 지극히 단순 하지만 의미심장한 상징을 내포하고 있는 빛을 품고 있는 기하학적 조형물과 만나게 된다. 기하학적 질서를 지닌 세 개의 원이 결합된 도형, 정삼각형 두 개가 다윗의 별로 결합된 도형, 삼각형 8개가 중심점으로 모여들어 결합된 팔각형은 지금까지 전개된 작가의 조형의식이 기본으로 다시 돌아가 우주적 생명, 우주적 질서, 우주적 도형으로 환원됨을 의미한다. 삼원에서 작가가 그동안 의구심을 품고 탐구하던 세계를 구성하는 여러 대칭적인 개념과 관념들의 개별성과 통합성의 의미를 읽어내는 것은 어렵지 않다. 또한 ‘다윗왕의 방패(Magen David)’인 별의 형상에서 이 작가의 종교적 신념도 살펴볼 수 있다. ‘완전함’과 ‘우주’ 등을 함축하는 팔각형의 도형에서는 작가의 조형관을 함축하려는 의지의 표식을 발견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기하학적 환원의 의미는 이 작가가 새로운 차원으로 나아가려는 출발선에 다시금 서 있음을 상징한다. 이 작가의 다음의 행보가 벅차게 기대되는 이유이다. 자신의 순수한 영혼에서 우러나오는 소리를, 빛의 꽃으로 다시 피어나게 하려 애쓰는 꽃망울의 잠재를 이들 기학학적 도형에서 살펴볼 수 있다.


최 은 주


2012. 09 한국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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