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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조각의 단면’…한국근현대조각 100주년에 담긴 역사성과 시대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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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295회 작성일 22-04-25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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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운의 근대 역사와 굴곡진 현대사를 담고 있던 서소문 근린공원이 시민의 휴식은 물론 역사와 문화를 함께 느낄 수 있는 복합공간으로 재탄생했다. 조선시대 서소문 밖 저자거리였던 이곳은 조선 후기 정치적, 종교적 박해로 수많은 신앙인과 사상가들이 처형된 장소로, 특히 천주교 박해로 인해 103인 성인 가운데 44명이 순교했다. 이러한 역사적 장소성 등을 고려해 2011년 새로운 공원 조성 작업이 추진됐고, 8년만에 역사공원, 박물관, 도서관 등을 갖춘 복합문화공간으로 변신했다.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은 5월 25일 개관식을 갖고, 첫 전시로 ‘한국 현대조각의 단면’이라는 특별기획전을 6월 1일부터 7월 25일까지 연다.
전시감독을 맡은 김영호(중앙대 미술학부) 교수는 “ ‘역사전시’를 바라는 주최측 의뢰로 100주년을 앞둔 한국 현대조각을 생각했다”며 “전시 공간의 역사성과 장소성을 고려하면서 종교색은 드러내지 않고 현대조각의 단면을 그대로 보여주려고 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근현대 조각은 청년 김복진이 도쿄미술학교 조각과에 입학한 1920년을 시점으로 삼는다면 서구의 근대 구상조각이 유입된지도 100년을 앞두고 있다.

김 교수는 “이번 기획전은 ‘박물관에서 열리는 현대미술 전시회’로 기존의 영역화된 전시문화의 관례를 넘어서 있다”면서 “향후 한국 근현대조각 100년의 계보를 정리하고 한국 근현대조각의 미의식에 대한 논의를 촉발하는 하나의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전시는 프롤로그(영상작업)와 현대조각 3개의 섹션으로 구성됐다. 프롤로그에서는 서구 근대 구상조각의 도입기(1930년대-1950년대)에 활동한 김복진, 김만술, 윤승욱, 김경승, 윤효중, 권진규, 백문기, 김세중, 전뢰진 등 9명 작가의 작품세계를 조명한다.

이들 1세대 조각가들은 인체 탐구에 기반을 둔 당대의 고전적 조형 방식을 받아들이며 선구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했다. 이 시기의 작품들은 대부분 소실돼 영상자료로 소개한다.

현대조각은 1950년대 후반에서 오늘에 이르는 대표작가 62명을 선전해 1부 ‘현대조각의 시원-비구상(추상)’, 2부 오브제ㆍ설치, 3부 신형상 조각 등 3부로 구성했다.

1부 ‘현대조각의 시원-비구상(추상)’에서는 1950년대 후반에서 1960년대를 대표하는 한국 조각 2세대 작가들인 김종영, 김정숙, 윤영자, 강태성, 김영중, 송영수, 최종태, 오종욱, 최의순, 최만린, 문신, 박종배, 정관모, 엄태정, 박석원(15명) 등이 나선다.
이들의 작품은 대상의 해석과 변형에 기반한 비구상과 조각을 비롯해 철재와 용접기법을 통해 물성을 강조하는 추상작업이 주를 이룬다.

2부 ‘오브제ㆍ설치’에서는 1970년대 이후 실험과 모색의 과정에서 태어난 오브제들과 설치적 경향의 작업이 소개돼 다변화돼가는 한국 현대 조각의 위상을 볼 수 있다. 백남준을 비롯해 이승택, 조성묵, 윤석남, 김광우, 심문섭, 전국광, 최인수, 변종곤, 안규철, 문인수, 원인종, 정현, 심영철, 윤영석, 서도호, 김종구, 이수경, 이재효, 권석만, 박선기, 성동훈, 김기철, 최우람, 한진수, 뮌, 금민정(27명) 등의 작품이 선보인다.

3부 ‘신형상’에서는 이번 특별기획전의 백미라 할 수 있는 새로운 경향의 형상조각 작품니 나왔다. 김영원, 홍순모, 이종빈, 박헌열, 배형경, 류인, 이용덕, 임영선, 이불, 구본주, 신미경, 조정화, 안재홍, 천성명, 권대훈, 이환권, 권오상, 최수앙, 이동욱, 박영철(20명)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전시의 첫 시선은 박물관 입구에 설치된 이환권 작가의 ‘난민 복서’ 조각이 맞는다. 이 작품은 2015년 문경에서 열린 세계군인체육대회에 참가했다가 이탈해 우여곡절 끝에 한국 난민 지위를 얻은 카메룬 출신 복서를 모델로 하였다. 복싱은 그의 생존방식이지만 피부색이 다른 이방인 파이터를 바라보는 시선은 아직 오만과 편견으로 가득 차 있다. 난민들에 대한 박해가 지구촌 곳곳에서 계속되고 있는 현실은 조선 후기 천주교 박해로 다수의 순교자를 낸 박물관의 역사성ㆍ 장소성과 일맥 상통하는 측면이 있다.

외상기법에 의해 시점에 따라 변형되고 일그러져 보이는 작가의 이방인 인물상은 세계 공동체 속에 더불어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며 자신과 타자의 관계를 묻는다.

이어진 지하1층 전시실에선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 ‘율곡’, 도자기 파편을 금박으로 붙인 이수경 작가의 ‘번역된 도자기’, 이불 ‘사이보그’, 윤영석의 ‘뼈총’, 비누 조각으로 시간성을 함의하는 신미경의 ‘Translation’, 자연에 가해진 인위성을 돌로 나타낸 이승택의 ‘묶인돌’ 등을 감상할 수 있다.

또 다른 공간엔 윤석남의 ‘어머니2-딸과 아들’, 유치원복에서부터 예비군ㆍ민방위복을 통해 자기 족적과 시대성을 나타낸 서도호의 ‘나의 39년 인생’, 조성묵의 ‘메신저&커뮤니케이션’, 철을 갈아 만든 김종구의 ‘’Grinding’, 노천 공간에 자리한 김영원의 ‘중력 무중력’ 등이 눈길을 끈다.

이번 전시의 메인 공간인 특별전시실 오른쪽 넓은 공간에 걸려있는 박선기의 ‘An agregation’ 이 신선하게 다가온다. 공중에 붓으로 드로잉한 것 같은 작품은 숯을 치밀하게 연결한 것으로 공간을 제대로 만났을 때 더욱 빛을 발한다는 느낌을 준다.
‘한국 현대조각의 단면’ 특별전시실은 한국 조각 도입기 작가를 소개하는 프롤로그로 시작된다. 서구 고전주의 조각의 경향을 나름의 시각으로 받아들인 1세대 작가들의 대표작을 영상으로 만날 수 있다. 같은 ‘소년상’임에도 김복진의 튼튼하고 미래가 보이는 소년과 김경승의 매우 아카데믹하고 정형화된 미숙한 소년 모습은 서로 대비되며 시대를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를 보여준다.

이어서 한국 추상 조각의 시원인 김종영ㆍ김정숙의 작품이 최우선으로 다가온다. 김정숙 작품은 구상 ‘소년’과 비구상 ‘토르소’가 함께 전시돼 감상의 재미를 더한다. 문신의 조각 ‘무제’는 세월을 느끼게 하며 나무에 깃들여진 숙성의 미를 실감케 한다.

송영수 대표적 중 하나인 ‘효(曉)’는 구상과 추상이 어우러진 경계의 모호함을 보여준다. 최의순의 ‘수난자 머리’는 시멘트의 질감이 잘 나타나 있고, 윤영자 ‘가을 여심’, 김영중 ‘농촌의 여가’, 최만린‘현(玄)’, 오종욱 ‘위증인, 정관모 ’심리‘, 엄태정 ’태세‘, 박종배 ’강‘, 박석원의 상파울르 비엔날레 출품작인 ’핸들‘ 등이 역사성과 함께 무게감있게 다가온다.

같은 공간에 전국광 ‘매스의 내면’, 최인수 ‘길’, 동아미술상 1회 수상자인 변종곤의 오브제 위에 페인팅한 ‘무제’, 안규철의 ‘영원한 신부’가 각각의 메시지를 전한다. 최수앙 작가의 ‘Condition for Ordinary-Settlement’는 일종의 21세기 인간 존재를 표현한 작품으로 주제, 기법 면에서 매우 독특하다. 그 옆 천상명 작가의 ‘그림자를 삼키다’는 본인만이 아닌 현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에 대한 시선을 보여주는 듯하다. 류인 ‘심저’, 구본주 ‘갑오농민전쟁’, 조각에 빛을 도입한 박헌열의 ‘’Forest Description’, 안재홍의 신체ㆍ생태의 유기적 생명의 흐름을 함의하는 ‘나를 본다’ 등이 이어진다.

지하3층 상설전시장이자 기획전시장엔 천주교 박해와 관련된 자료와 함께 조각들이 전시돼 있다. 임영선의 ‘반복과 차이’, 김영원의 ‘중력 무중력81-5’, 인간 군상 형태로 존재의 본질에 대해 묻는 배형경의 ‘암시’ 등이다.
위안과 치유의 공간으로 불리는 콘솔레이션홀과 이어진 '하늘광장'은 사상과 종교의 자유를 위해 희생당한 사람들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는 추념의 의미를 지닌 곳이다. 제임스 터렐이나 안도 다다오 건축 양식의 특징을 반영한듯 지하에 있어도 천장을 텄기 때문에 명칭 그대로 하늘을 볼 수 있다.

이 공간엔 철도 침목으로 만든 인간 형상을 한 정현 작가의 ‘서 있는 사람들’ 이 자리하고 있다. 침목은 기나긴 시간 동안 혹독한 환경의 침식작용을 견뎌내며 존속하는 물질인 만큼, 그 안에는 장구한 시간, 역사에 대한 증언, 고통, 저항, 인내 등과 같은 다양한 의미가 함축돼 있다. 이러한 침목을 거칠게 잘라 만든 44점의 작품은 이 공간에서 참수당한 44명의 순교자에 대한 헌사의 의미를 담고 있기도 하다.
미디어 영상작인 금민정 작가의 ‘하늘길’은 물ㆍ갈대 영상과 사운드가 어우러진 길을 따라가면 맞은편에 숨쉬는 문이 열리며 제3의 풍경이 펼쳐진다. 바로 오른쪽 권석만 작가의 ‘발아’ 작품이다. 7톤 정도 되는 강돌을 5개 마디로 절단해 내부를 판 것으로 공간과 작품이 만났을 때 발생시킬 수 있는 힘이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전 전시는 박물관의 특별한 공간에서도 펼쳐진다. 지하주차장 공간을 활용해 창고갤러리로 만든 ‘갤러리 창조 곳간’ 으로 이곳에선 ‘빛의 정원’ 콘셉트로 빛과 소리를 담은 작가들의 작품이 선보인다. 성동훈의 ‘돈키호테’, 권대훈의 ‘Gulliver Eye 1’, 김기철의 ‘밤바다’ , 현대사회와 인간을 코믹하게 풍자한 이동욱 작품, 최우람의 기계생명체 작업, 뮌의 ‘앙상블’, 빛과 물의 파동을 연결시킨 심영철의 ‘메트릭스가든’ 등은 신선한 예술적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김영호 교수는 이번 전시가 한국 현대조각의 역사가 아니라 한국 현대조각의 단면을 비구상(추상), 오브제ㆍ설치, 신형상의 세 부분으로 구분해 전시하다보니 추상조각 1세대의 영향을 받은 조각 대가들과 다른 훌륭한 작가들이 빠진 부분은 남은 과제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이번 전시를 전체적으로 준비하면서 우리나라 현대작가들의 역량이 세계 수준급이라는 것을 확인했다”면서 “그럼에도 세계화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다른 이유 때문으로 한국의 위상과도 관련있는 만큼 작가 이외의 단체라든가 기관, 정부 등에서 정책적ㆍ제도적으로 개선해야 할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번 전시에 대한 소회를 묻자 “한국예술에서 조각 분야는 소외된 측면이 없지 않다”며 “이번 전시를 통해 한국 근현대조각에 담긴 시대정신을 도출하고, 시각예술분야의 담론을 형성하며, 미술사의 지평을 확산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박종진 대기자




박종진 대기자 jjpark@hankooki.com

출처 : 주간한국(http://weekly.hankook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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