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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정원에서 세상을 보다 - 김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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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96회 작성일 23-11-06 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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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호 (미술평론가, 중앙대교수)


 

한국현대미술 현장에서 심영철이 차지하고 있는 위상은 매우 특이하다. 작가는 1983<>의 형상을 변용한 돌조각 시리즈로 첫 개인전을 개최한 이래, 조각뿐만 아니라 설치미술, 뉴미디어, 홀로그램, 그리고 퍼포먼스와 환경미술에 이르는 다양한 장르의 경계를 거침없이 넘나들며 활동해 온 다채로운 경력의 소유자다. 또한 여성성에 대한 개별적 탐색에서 시작해 종교적 메시지, 섹슈얼리티와 역사적 사건에 이르는 다양한 주제들을 채택하고 작품으로 표상해 온 이력도 작가의 특이성을 보여주는 요인들이다. 작가로서 30년의 여정이 빗어낸 장르와 주제의 다양성은 작가가 천성적으로 타고난 창작의 열정으로부터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의 창작에 대한 열정은 50대 중반의 나이에도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다.

 

심영철의 조각가로서 역량은 <빗의 단계적 표상> 시리즈의 석조작업을 통해 일찍이 나타난다. 신체를 단장하는 소품이자 여성성을 상징하는 빗의 조형미와 빗살의 반복율은 작가의 작업동기를 자극시켰고, 나아가 그 기본형을 극대화하거나 변형시킴으로서 조각가로서의 뛰어난 자질과 소양을 주변으로부터 인정받았다. 필자가 작가의 초기 작업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이유는 이 시기의 작업이 일구어낸 조형적 성과뿐만 아니라 후에 나타나는 그의 복합적이고 다양한 기법들이 조각에 대한 작가의 뛰어난 조형감각과 미의식에 기반을 둔 것임을 강조하고 싶기 때문이다. 심영철은 대학을 졸업하면서 신예작가로서의 충분한 자질을 주변으로부터 인정받았다. 정관모 교수는 서문을 통해 그의 미의식과 감각도 매우 첨예적이라 칭찬을 아끼지 않고 있다.

 

심영철의 작업에 트랜드라 할 수 있는 <전자정원> 시리즈는 생활환경의 변화에 따른 결실이었다. 5년간의 미국 유학생활에서 발견한 새로운 테크놀러지 매체와 귀국 후 천착하기 시작한 기독교의 종교적 주제가 한데 어우러지며 구축한 독자적인 조형어법이었다. 1990년대가 진행되는 동안 작가는 돌과 나무라는 전통적 재료와 기법의 범주를 벗어나 다양한 매체에 대한 탐구를 실천해 나간다. 모니터와 네온 그리고 홀로그램과 광섬유 따위의 매체를 통해 현란한 시각체험의 극대화를 시도했던 이 시기의 작업들은 축제 혹은 살풀이의 기운들로 충만해 있다. 특이한 점은 심영철의 <전자정원> 시리즈가 이중적 판타지를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의 작업은 신성한 종교의 메시지를 담고 있으나 동시에 욕망의 기운들인 에로티즘과 성적 도상들이 동시에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심영철의 <전자정원> 시리즈는 국내외 평론가들에게 다양한 비평적 견해를 촉발시키면서 세간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그리고 그의 작업에 나타나는 초월적 성()과 에로스적 성()이 결합된 이중적 판타지의 근원은 인간으로서 작가의 자기성찰에 근거한 산물이며 작품은 그에 따른 변신의 진솔한 결과물로 해석되었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시작된 <모뉴멘탈 가든> 시리즈는 가변적인 설치작업이 지닌 조형적 한계와 작가의 내면에 자리잡고 있던 기념비적 조형의식이 타협된 결과로 보인다. 그리고 환경조형물에 대한 수요의 증대에 따라 자연스럽게 형성된 시리즈라 볼 수 있다. 밀폐된 전시장 공간으로부터 점차 벗어나 자연과 도시에 작업이 설치되면서 심영철의 조형세계가 일반 대중들에게 알려지는데 기여한 경향이기도 하다. 고대 신전을 연상케 했던 거대한 석조기둥들은 다양한 형태와 크기의 버섯 모양으로 변주되며 확장된 공간속에 설치되었다. 심영철에 있어 이 새로운 탐구의 노정은 이전의 작업과 연속선상에 있었다. 가령, 매체나 소재의 다양성은 전과 다르지 않은 것이었고 작가의 열정과 역량이 실내공간을 포함한 도시와 자연공간으로 확대되었을 뿐이다. 그의 <모뉴멘탈 가든>은 전통적인 재질의 조각형식 뿐만 아니라 유리와 조명 그리고 다양한 개체가 군집된 멀티미디어 예술을 지향하고 있다. 심영철의 환경조형 작업은 다국적 골프장 개발 사업을 추진하는 기업 <Korea Golf & Art Village>의 컨설턴트로 활동하기 시작하면서 자연과 예술이 함께 어우러진 공간을 조성하는 성과를 거두게 된다.

               

최근 심영철은 다양한 크기의 스테인리스 스틸 재질의 구슬을 이용해 단일한 형태의 설치작업을 시도하고 있다. 그 중 작가가 특별히 관심을 보이는 <Shape of Sound> 시리즈는 10cm 지름 안팎의 구슬을 이용해 꽃의 형상을 만들거나 사각의 공간을 조형하는 작업이다. 수직의 선에 매달린 구슬들은 바람과 같은 자연 에너지나 관객의 개입에 의해 서로 부딪치며 맑은 소리를 내도록 장치되어 있다. 심영철의 <Shape of Sound>는 움직임을 도입하고 있다는 점에서 움직이는 조각(Kinetic Sculpture)’이며, 소리를 공간 지각의 요소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음향 조각(Sound Sculpture)’이다. 나아가 스테인리스 스틸 재질의 구슬 표면에 반사되는 빛의 효과를 중시하는 빛의 조각(Light Sculpture)’이며, 구슬의 표면에 비추어진 주변 이미지들은 어안렌즈로 포착한 신비로운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환영 조각(Image Sculpture)’이다. 이렇듯 <Shape of Sound>는 움직임과 소리 그리고 빛과 이미지를 품은 다차원적 조형작업으로서, 그리고 나아가 관객 참여형 작업으로서 다양한 조형미와 더불어 조각의 영역을 확장시키고 있다.

  

얼마전 심영철은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 광장의 에스컬레이터 상부 공간에 <Shape of Sound> 시리즈 하나를 설치했다. 이 작업은 스테인리스 스틸 재질의 구슬로 조합된 설치작업이면서도 하나의 기념비적 작품으로서 완결된 효과를 보여준다. 천정에 매달린 거대한 꽃잎 형상의 작품이 에스컬레이터 주변 공간과 긴밀한 관계를 만들어 내고 있다. 이따금 외부로부터 들어와 흐르는 공기는 구슬을 움직여 부딪치게 하며 맑은 소리를 낸다. 그리고 작품 아래 일상 공간에 설치된 조명이 수백개의 구슬마다 반사되어 보석과 같은 광채를 발하고 있다. 움직이는 에스컬레이터에 서있는 관객들의 이미지 역시 수백개 구슬의 표면으로 흩어지면서 신비로운 환상을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심영철의 설치작업은 그것이 놓인 장소와 연계를 가지며, 그때 그때 주어진 조건에 따라 각각 다른 감흥과 의미를 선사한다.

 

한편 심영철의 <Shape of Sound> 시리즈 중 또 다른 유형의 작업은 스테인리스 스틸 재질의 구슬을 꿰어 사각형의 철제 구조물 사방에 커튼처럼 드리워 놓은 것이다. 사각 구조물의 바닥에는 거울이 설치되어 있어 하부로 커튼 이미지가 연장되도록 설계되어 있다. 특정한 조형이미지를 담은 작업과는 달리 이 작품은 퍼포먼스를 위한 공간으로 마련된 것이다. 작가는 관객들을 내부 공간으로 초대해 자신이 체험한 소리의 기억을 함께 나누길 바란다. 벽을 쓸어내리듯 손으로 구슬의 커튼을 터치하면서 그 구슬에 비추어진 수백의 이미지에 나르시즘의 욕망을 분사시키기를 바란다. 구슬 커튼은 이렇듯 체험적 공간이자 사유의 공간으로 기능한다.


심영철의 예술은 늘 경계에 서 있다. 다양한 장르와 매체의 경계 뿐만 아니라 내면에 흐르는 의식의 단면들이 서로 충돌하며 만나는 접점에서 그의 예술이 자리잡고 있다. 역순으로 살펴보면 경계의 모색은 심영철의 예술에 당위성을 부여하는 요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장르 사이에 놓인 경계가 해체되고 재구성되는 지점에서 작가의 창조적 에너지가 작동되는 것이다. 때로는 치졸하게, 때로는 모순적으로, 때로는 미완의 행동으로 보이는 그의 예술적 노정은 미학적 완결성이나 비평적 규준에 의해 진단되기를 부인하려는 측면이 있다. 삶의 노정이 선과 악, 진과 위, 미와 추의 경계에 대한 사색의 과정이며 예술이 그것을 드러내는 활동이라면 그의 작업의 근간을 흐르는 힘의 원천으로서 경계에 대한 사유는 그의 예술에 진정성을 담보해 주고 있다는 생각이다. (2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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