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체와 장르를 넘나드는 멀티미디어 아트의 연금술 - 이경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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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체와 장르를 넘나드는 멀티미디어 아트의 연금술
- 심영철의 퍼포먼스
심영철은 조각은 물론 설치, 영상, 퍼포먼스, 평면, 그리고 디지털 매체를 종횡하며 한국 현대미술에서 자신만의 독자적인 예술 영토를 구축해 왔다. 그의 예술을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는 ‘인간’이며, 이를 시각화하는 방법론은 ‘매개자(Messenger)’로서의 실천이다. 작가는 스스로를 진리가 통과하는 매개체로 설정하고, 조각적 엄밀함을 바탕으로 비물질적인 소리와 빛, 그리고 치유와 회복의 경험을 퍼포먼스의 영역으로 끌어들였다.
심영철의 작업은 예술적 유희에 머물지 않는다. 그는 권력 구조, 환경, 여성성, 공동체, 그리고 인간 존엄성이라는 묵직한 좌표들을 따라 움직이며, 관객을 작품의 완결자로 초대한다. 특히 1990년 초반의 아날로그적 수행성에서 2026년 AI 비전 시스템이 도입된 지능형 작업에 이르기까지, 그의 궤적은 현대미술이 기술을 어떻게 인문적·매개적 도구로 승화시킬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장대한 서사(narrative)이기도 하다.
매개자로서의 신체: 설치미술의 시간적 확장
1990년대 초반, 한국 현대미술은 포스트모더니즘의 파고 속에서 전통적 매체에 대한 회의와 새로운 소통 방식에 대한 갈구로 가득 차 있었다. 심영철은 이 시기, 종교적 상징물과 미디어라는 이질적인 매체를 통해 존재의 근원을 묻기 시작했다. 1990년 서울 인공갤러리에서 선보인 <인간!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에 있다가 어디로 가는가>는 그 제목부터가 인류사의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이때 작가는 성경 1,500권을 쌓아 올린 거대한 탑을 해체하여 관람객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나누어주었다. 인문학적으로 이 퍼포먼스는 ‘지식의 독점’과 ‘박제된 진리’에 대한 해체적 성격을 띤 작업이다. 견고한 탑으로 상징되는 제도적 권위는 작가의 손을 거쳐 파편화되고, 그 파편(성경)은 관객의 손에 쥐어짐으로써 비로소 살아있는 생명력을 얻는다.
1992년 캐나다 Theodore 현대미술관의 <삶과 죽음을 주관하시니>는 시각의 전치를 통해 실존을 증언한다. 미술관에 설치된 카메라가 관객을 비추고, 그 영상이 모니터를 통해 다른 관객에게 전달되는 구조는 오늘날의 SNS 시대를 예견한 듯한 ‘매개된 시선’을 보여준다. 여기서 관람 행위는 단순한 구경이 아니라 타자와 자아를 연결하는 윤리적 사건이 된다. 모니터 속 타인의 얼굴을 통해 나의 유한함을 발견하고, 삶과 죽음이라는 거대한 섭리 앞에 선 인간의 미약함을 확인하게 하는 이 작업은 미디어를 예술적 성찰의 도구로 정초시키고 있다.
90년대 후반, IMF 외환위기라는 국가적 트라우마와 세기말의 불안감이 교차하던 시기에 심영철의 퍼포먼스는 집단적이고 원초적인 생명력을 띠게 된다. 1996년 서울에서 발표된 <풀어놓아 다니게 하라>는 나사로의 부활을 모티프로 삼는다. 12명의 참여자가 거친 포대자루를 뚫고 나오는 행위는 억압된 체제와 죽음의 권세로부터의 탈출을 상징한다. 특히 새 생명을 상징하는 버섯 형태의 오브제를 ‘시루’에 담아내는 행위는, 서구적 경험을 한국의 토속적 정서와 연결한 독창적인 해석이다. 여기서 사랑은 낭만적 감상이 아니라 ‘죽음처럼 강한’ 변형의 에너지이자, 인간을 억압하는 모든 결박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실존적 투쟁’으로 그려진다.
한편, 1998년의 <에덴가든>은 인간의 기원인 ‘흙’으로의 회귀를 보여준다. 온몸에 진흙을 바른 신체들은 문명의 옷을 벗어던지고 인간의 근원적인 상태로 돌아간다. 진흙은 생명의 요람인 동시에 우리가 돌아갈 무덤이기도 하다. 어둠 속에서 진흙을 뒤집어쓴 채 행진하는 이들의 모습은, 타락한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인류의 오랜 치유의 정서가 담겨있다. 이처럼 심영철의 90년대 퍼포먼스는 우리가 잊고 지냈던 ‘인간 존엄성’이라는 지표를 재확인하는 과정이다. 해체와 응시(초반), 그리고 해방과 회귀(후반)로 이어지는 이 장대한 여정은 분절되고 고립된 현대인들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매개된 시선의 확장
1990년대 작업이 관객을 전시장으로 초대하여 '응시'하게 만들었다면, 2000년의 작업은 작가가 직접 대중의 삶으로 들어가 디지털 영상을 통해 소통을 시도한다. 이는 작가가 줄곧 강조해 온 '메시지를 전달하는 매개자'로서의 역할이 능동적이고 사회적인 차원으로 진화했음을 의미한다.
1996년 손에 들려있던 '나무버섯' 오브제는, 2000년 작업에서 지하철 내부를 가득 채운 강렬한 형광의 버섯 모티프와 3D 입체 영상으로 변모한다. 재료는 아날로그적 물성에서 디지털 비트로 바뀌었지만, 그 안에 담긴 '생명력'과 '치유와 회복'에 대한 지향점은 일관적으로 유지된다. 일상적 이동 수단인 지하철 객실을 '전자 정원(Electronic Garden)'으로 탈바꿈시킨 것은, 90년대 <에덴가든>에서 보여준 원초적 회귀 본능을 첨단 기술을 통해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이전 작업이 종교적 숭고미에 기반한 '제의'의 성격이 강했다면, <달리는 디지털 영상미술관>은 ‘기술 복제 시대의 예술’이 어떻게 대중과 호흡하며 영적 위안과 감각의 전환을 제공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현대적 제의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다.
2000년이라는 밀레니엄의 전환기에 발표된 <다가오는 새 천년>은 기계 문명의 상징인 디지털 코드를 예술적 언어로 치환하여 인류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한 작업이다. 심영철은 무미건조한 디지털 코드에 작가 특유의 ‘의식적(ritual) 행위’를 덧입힌다. 이미지 속에서 포착된 숫자들은 평면적인 정보를 넘어, 공간을 점유하고 움직이는 조형 요소로 기능한다. 디지털 숫자 ‘0’과 ‘1’은 현대 문명의 새로운 DNA이자 보이지 않는 질서를 가시화하는 매개체이다. 작가는 이 숫자들을 퍼포먼스의 언어로 전환함으로써, 디지털 문명이 단순한 기술적 진보를 넘어 인간의 인식과 소통 구조를 근본적으로 재편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 퍼포먼스에서 천년의 바뀜은 단순한 시간의 흐름이 아니라 ‘감각의 전환’으로 제안된다. 작가는 디지털 문명의 차가운 논리 속에 인간의 숨결을 불어 넣어, 기계적 세계와 예술적 세계가 조우하는 지점을 설계한다. 0과 1이 교차하는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행위들은 마치 새 시대를 맞이하는 현대적 제의와도 같다. 동시대 미술의 관점에서 이 작업은 미디어아트의 초창기적 실험을 신체적 수행성(Performativity)과 결합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심영철은 기술에 함몰되지 않고 기술을 ‘매개자’의 도구로 부림으로써, 디지털 시대에도 변하지 않는 예술의 본질인 ‘숭고함’을 이끌어낸다.
2007년 한국실험예술제에서 발표된 <삶과 죽음의 경계>는 ‘생과 사’를 단절된 두 세계가 아닌, 공존하는 상태로 상호 침투시킨다. ‘살아도 죽은 자’와 ‘죽어도 살아있는 자’라는 역설적 실존은 현대인의 영적 고립과 육체적 생존 사이의 괴리를 날카롭게 파고든다. 작가는 상징적 행위를 통해 육체라는 물리적 한계와 치유라는 무형의 가치가 교차하는 ‘문턱(threshold)’의 순간을 시각화한다. 퍼포먼스에서 나타나는 애도와 정화는 단순히 죽음을 슬퍼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생명으로 나아가기 위한 통과 의례로 기능한다. 이는 작가가 줄곧 추구해 온 ‘시간의 조각’이 인간의 취약함을 어루만지고 소생의 가능성을 여는 치유와 회복의 장으로 확장됨을 시사한다. 당시의 작업은 신체를 조형적 언어로 활용하여 비가시적 진리를 가시화하며, 관객을 단순한 목격자가 아닌 구원의 여정에 동참하는 동반자로 격상시킨다. 심영철은 이 시기의 작업을 통해 예술이 어떻게 시대의 아픔을 치유하는 동시에 엄혹한 시대에 빛을 비추는 등불이 될 수 있는지를 탐문하고 있다.
기억의 소생과 화해의 몸짓
심영철의 2010년 퍼포먼스 <역사를 넘어서>는 한국 근대사의 비극적 상징인 명성황후를 예술적 언어로 소환하여, 역사를 박제된 기록이 아닌 현재 안에서 살아 움직이는 담론으로 치환한다. 서울과 일본 오사카를 거쳐 캐나다 퀘벡에서 완성된 이 여정은, 민족적 서사를 동시대적 보편 가치인 ‘화해와 번영’으로 승화시킨다. 이 작품은 명성황후라는 역사적 인물의 고통스러운 종말을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존재를 국가적 평안을 기원하는 상징적 인물로 재해석한다. 퀘벡 퍼포먼스에서 사용된 태평무(太平舞) 음악은 이러한 의도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작가는 비극적 역사의 출발점을 넘어, 기억과 상상이 교차하는 수행적 여정을 통해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고 미래의 번영을 꿈꾸는 상생의 비전을 제시한다.
현대미술의 관점에서 주목할 점은 한국 왕실 복식을 활용한 시각적 구성이다. 심영철에게 의상은 관객의 상상력을 확장하는 ‘입는 조각’이자 퍼포먼스의 언어이다. 화려한 복식과 절제된 몸짓은 공간에 역사적 무게감을 부여하며, 정지된 이미지로서의 ‘전통’을 생생한 ‘현재’의 움직임으로 전환한다. 이는 작가가 줄곧 추구해 온 ‘신체를 조형 요소로 활용하는 시간의 조각’ 개념이 민족적 정체성과 결합하여 정점에 달했음을 보여준다.
2010년 발표된 심영철의 <연모>는 작가의 개인적 감정과 내면의 파동을 예술적 의지로 치환하여, ‘그리움’이라는 보편적 정서를 수행적 언어로 풀어낸 작업이다. 90년대부터 이어진 그의 퍼포먼스가 거대 담론과 숭고미에 집중했다면, <연모>는 인간적이고 미시적인 감정의 결을 따라가며 관객과 깊은 정서적 공감대를 형성한다. 이 작품은 한국 경북 고령의 낙동강변과 일본 도쿄라는 이질적인 공간을 공유한다. 특히 대공사 중이었던 낙동강의 풍경은 작가 내면의 아픔 및 기다림과 공명하며, 퍼포먼스 예술의 핵심인 ‘장소 특정성(Site-specificity)’과 ‘현장성(Liveness)’을 극대화한다. 자연과 호흡하며 전개되는 작가의 몸짓은 강물에 투영된 그리움의 상징이 되어, 관객에게 아련한 상상의 언어를 건넨다. 충주에서 선보인 ‘보이스 퍼포먼스’와 도쿄의 ‘무빙 인스톨레이션’은 연모의 감정을 다각도로 시각화하고 청각화한다. 마음 깊이 내재된 사랑과 기다림은 단순한 감상에 머물지 않고, 작가의 목소리와 움직이는 설치물을 통해 구체적인 ‘미학적 실천’의 형식으로 제안된다. 여기서 아픔은 치유의 근거가 되고, 그리워하는 행위 자체가 하나의 예술적 매개 요소로 자리 잡는다.
한편, 작가가 삼천포 해변, 서울, 부천, 강화도 등지에서 펼친 보이스 퍼포먼스(Voice Performance) 연작은 소리를 단순한 청각 매체를 넘어 공간을 재구성하는 ‘보이지 않는 조각’으로 승화시킨 작업이다. 심영철의 보이스 퍼포먼스는 ‘언어 이전’의 원초적 음성을 통해 인간과 자연, 개인과 공동체의 경계를 허무는 치유의 여정이다. 작가는 조각가로서 지닌 공간 장악력을 ‘목소리’라는 비물질적 매체로 확장하여, 보이지 않는 소리의 진동이 어떻게 공간을 조형적으로 구성할 수 있는지를 실험한다. 여기서 목소리는 공간에 흩뿌려지는 ‘소리의 입자’들이다. 촛불의 일렁임이나 물결의 파동처럼 퍼져 나가는 빛과 음파는 시각적 풍경과 결합하여 하나의 감각적 판타지를 구축한다. 작가는 신체의 움직임과 목소리의 높낮이를 정교하게 설계하여, 보이지 않는 소리에 부피와 질감을 부여하며 감각의 전환을 촉발한다.
작가가 2010년대 초반 선보인 작업들은 90년대부터 이어온 '인간 존엄성'의 화두를 동시대적 감각과 집단적 치유의 형식으로 승화시킨 과정이다. 2011년 태국에서 발표된 <축복, 사랑>은 10명의 참여자가 인류의 다양성과 공존을 몸짓으로 구현하며, 예술이 어떻게 차이를 넘어선 연대와 연결의 매개가 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같은 해의 <환상몽타주> 역시 은빛 구체들이 상호작용 하는 설치 공간 속에서 억압된 감각이 다시 열리는 순간을 의례적으로 조직한다.
특히 2014년 제주현대미술관에서 선보인 <Blissful Garden - 춤추는 정원>은 작가의 작업 세계를 폭넓게 조망하는 전환적 계기를 마련한 전시였다. 『걸리버 여행기』를 모티프 삼아 문명 속 인간성 파괴의 상처를 성찰한 이 전시는, 관객이 직접 촛불을 들고 보이스 퍼포먼스에 동참함으로써 예술이 집단적 회복의 의식이 되는 극적인 순간을 선사했다. 이 작업의 성과는 이후 2023년 선화랑 전시를 기점으로 더욱 선명한 생명력을 얻어 지금까지 이어진다. 이는 매개자로서의 작가, 빛과 반사가 빚어내는 순간적인 현상, 그리고 신체와 공간의 상호작용이 극대화된 형태로 심영철 작업의 핵심 요소다.
결국 심영철의 작업은 초기 작업의 구조적 틀을 넘어, 이제는 관객의 경험 구조 안에서 감각의 전환과 치유를 일으키는 ‘연결의 정원’으로 진화하고 있다. 작가는 환상적인 미장센과 원초적인 울림을 결합하여 문명의 상처를 어루만지며, 관객을 단순한 관찰자에서 사랑과 축복의 서사를 함께 완성하는 공동체의 일원으로 초대한다.
기술로 구현된 디지털 정원, 그리고 나눔의 축제
심영철 작가가 2023년부터 2025년까지 서울, 베니스, 트빌리시, 사라예보를 거치며 펼쳐온 <꽃비정원> 연작은 90년대부터 이어온 ‘에덴’의 서사가 첨단 기술(AR, VR, 몰입형 영상) 및 수행적 의례와 결합하여 완성된 디지털 낙원의 결정판이다. 이 연작은 예술이 기술을 통해 어떻게 치유와 회복의 장소로 기능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거대한 감각적 실험이다. 2023년 서울 선화랑 전시를 기점으로 베니스, 조지아, 사라예보로 이어지는 이 여정은 작가가 평생 탐구해온 ‘시간의 조각’이 디지털 매체의 빛과 반사를 통해 발생하는 순간적 감흥을 관객과 공유한다. 서울 선화랑에서 시작된 <꽃비정원>(2023)은 관객을 일상에서 분리하여 ‘다른 감각의 세계’로 인도하는 ‘문’의 설치에서 시작된다. 벚꽃잎이 비처럼 흩날리는 몰입형 영상과 자개로 제작된 벚꽃 오브제는 아날로그적 물성과 디지털 이미지를 감각적으로 결합한다. 관람객은 거울로 구성된 만화경 공간을 거쳐 VR 세계로 진입하며, 현실과 가상의 경계에서 자신의 존재가 낙원, 즉 공간의 일부로 확장되는 경이로운 체험에 몰입된다.
2024년 베니스와 트빌리시에서 펼쳐진 퍼포먼스는 ‘왕(King)’과 여왕(Queen)이라는 역사적 모티프를 도입하여 서사의 깊이를 더한다. 라이브 퍼포먼스에서 고뇌하던 왕이 매개자의 보이스에 이끌려 환희의 춤을 추고 사라지는 과정은, 가상 세계에서 자아(AR)와 실재하는 몸의 의례가 하나로 연결되는 지점을 설계한다. 이는 역사적 상처를 넘어선 평화와 번영의 메시지를 유럽의 심장부에서 선포한 예술적 사건이었다. <꽃비정원> 연작에서 벚꽃잎은 찰나의 아름다움이자 소멸을 넘어선 환생의 상징이다. 심영철은 향기, 소리, 빛과 영상, 그리고 신체의 움직임을 동원하여 관객을 관찰자에서 낙원의 주인공으로 치환시킨 것이다.
90년대의 아날로그 미디어가 2020년대의 디지털과 몰입형 영상으로 바뀌었었을 뿐, 심영철 작업의 중심에는 여전히 ‘빛과 반사’를 통해 발생하는 순간적 전환과 매개자로서 관객과의 소통이라는 일관된 좌표가 놓여 있다. 이러한 접근은 기술이 인간을 소외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잃어버린 낙원의 감각을 되찾아주는 매개자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서울에서 사라예보까지 이어진 꽃비의 행렬은, 분절된 세계를 예술로 잇고 상처 입은 영혼들을 치유의 길로 안내하는 심영철식 ‘디지털 정원’의 완성태라 할 수 있다.
한편, 2010년 김천에서 시작되어 수원, 멕시코(2011), 그리고 최근 충주(2024)에 이르기까지 지속되고 있는 <포도로부터>는 심영철의 퍼포먼스 중 가장 인터랙티브(Interactive)하며 공동체적인 성격이 강한 작품일 것이다. 이 작업은 행위자의 신체가 설치미술의 매개체이자 동시에 생명을 나누는 공동운명체가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 작업은 행위자의 몸에 실제 포도송이와 잎사귀, 줄기를 자연스럽게 부착하는 ‘설치’ 것으로 시작된다. 사진 속 작가는 풍요로운 결실의 포도나무 그 자체가 되어 공간에 자리한다. 이는 90년대부터 작가가 견지해 온 “몸은 설치 공간 안에서 하나의 조형 요소가 된다”라는 미학적 실천이며, 인간과 자연물이 경계 없이 하나로 통합된 시각적 풍경을 만들어낸다.
이 작업의 핵심은 ‘내려놓음’에 있다. 작가는 자신의 몸에 매달린 포도를 소유하지 않고 관객과 온전히 공유한다. 아이들과 어른들이 행위자의 몸에서 포도를 직접 따 먹는 행위는, 예술가와 관객 사이의 심리적 벽을 허물고 ‘나눔’이라는 원초적 경험으로 회귀하게 한다. 작가가 직접 포도를 따서 관객에게 던져주는 행위 역시 이러한 나눔과 소통의 적극적인 확장이자 축제적 요소로 기능한다. 작가는 자신의 몸을 빌려 관객에게 생명을 상징하는 사물을 나누어줌으로써, 현대판 성찬(Eucharist)을 예술적으로 재현한다. 멕시코 국립미술청 주최 페스티벌 등 해외에서도 큰 공감을 얻었던 이유는, 이 몸짓이 언어를 초월하여 인간 존엄성과 공동체의 가치를 건드리는 보편적 생명의 서사이기 때문일 것이다.
한편, 2026년 서울국제조각페스타에서 선보인 최신작은 심영철 예술의 미래적 지향점을 선포한다. 이 작업은 AI 비전 카메라를 통해 관람객의 동선을 실시간으로 감지하고 안무화한다. 관객은 빛과 반사를 통하여 자신의 이미지가 무한히 증식되는 매트릭스 공간 안에서 ‘관람자이자 행위자’로 전환된다. 1,000여 명의 관람객 중 600명 이상의 데이터가 축적된 이 프로젝트는 예술이 과학적 연구 데이터인 동시에 미적 성찰의 도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인피니티 공간에서의 자기 조우는 존재의 유한성을 드러내는 철학적 경험으로 이어진다. 빛, 소리, 향기, 움직임이 결합한 이 ‘살아있는 정원’은 관객을 포용하며 어머니의 자궁에서 우주에 이르는 태초의 생명력을 복원한다.
이상에서 본 심영철의 예술은 고정된 물성을 깨고 흐르는 시간 속에 생명을 불어넣는 과정이었다. 그는 조각가로서 공간을 구축하고, 퍼포먼스 아티스트로서 시간을 빚으며, 이제 AI를 통해 인간의 지능과 감성까지 예술의 마당으로 끌어들였다. 그의 작업은 차가운 기술이나 박제된 유물이 아니다. 1990년대의 진흙이 2020년대의 디지털 비트로 변했을 뿐, 그 중심에는 언제나 인간을 사랑하고 치유하며 낙원으로 인도하려는 ‘매개자’로의 의지가 충만해 있다. 심영철이 빚어낸 이 장대한 매체 실험은 시간의 조각가가 빚은 치유와 회복의 서사시로써 동시대 미술이 잃어버린 ‘숭고함’을 되찾아주는 가장 강력한 빛으로 기억될 것이다.
이경모/미술평론가(예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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