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심영철의 (섭리)에 대하여 - 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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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심영철의 (섭리)에 대하여
- 제 8회 개인전에 부쳐 -
정작 언제부터 <설치미술>의 바람이 우리나라에 불어 닥치기 시작했는지 확실하게 말할 수는 없겠으나 적어도 지금의 상황으로 볼 때 이 미술이 오늘날 확대해 있는 것 만은 분명한 것 같다. 뿐만 아니라 그것이 타 미술 분야로 까지 침투해 들어가면서 현대미술의 한도 자체에 큰 지각 변동을 일으키고 있는 판국이다. 심영철이 바로 그 선두 주자의 한 사람이며 그것도 매우 이색적일 수도 있는 설치 작업을 펼쳐 보이고 있는 작가이다.
'이색적'이라고 했으나 그것은 여러가지의 의미에서이다. 우선 작가적 성분을 두고 볼 때 심영철은 조각가 출신이다.
그녀의 설치 작품이 복합적인 성격의 것이기는 하되 따지고 보면 그 '설치'에는 여전히 조각 개념이 항상 바탕에 까려 있는 것이다. 이는 다시 말해서 그녀의 설치의 기본 단위가 단순한 각종 오브제가 아니라 각기 나름대로의 '조소성'을 갖추고 있다는 말이며 그것들이 서로 어울려 하나의 환경적인 설치로 통합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심영철의 설치 그 자체를 두고 볼 때 그것은 다원적(多元的)인 성격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한편으로는 복합매체와 한편으로는 그것에 의한 형태 다원성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이들 두 요소가 서로 화답하는 하나의 앙상블 즉 '설치'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첫번째의 경우, 거기에는 대리석을 비롯하여 나무, 브론즈, 철재, FRP(섬유강화 플라스틱), 테라코타 등이 동원되고 있으며 또 두번째의 경우에 있어서는 키네틱 아트, 라이트 아트, 비디오 아트, 테크놀로지 아트 등이 망라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될 경우 '설치'라고 하는 환경적 공간 연출에도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여덟번째가 되는 이번 개인전에 심영철은 삼년 전의 선화랑에서의 작품전 때와 마찬가지로 <섭리(攝理)>라는 소재를 내세우고 있다. 다만 부제로서 <사랑은 죽음처럼 강하고...>라는 새로운 토를 달고 있다. 그리고 바로 그와 같은 소재를 통해 우리는 심영철의 일관된 예술적 발상의 근원을 찾아 볼 수 있을 것이며 아울러 그녀의 작품이 지니고 있는 한결같은 '성격적' 메세지 또한 읽을 수 있는 것이다.
설치 작업의 경우, 그것이 전시 공간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는 일이다. 그리하여 이번에 전시되는 작품은 그 공간 조건에 따라 대체로 3~4가지 유형으로 나뉘어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각기 독립된 전시실에 전시되는 이들 설치 작품은 저마다의 주제 내지는 라이트모티프를 갖추고 있거니와, 예컨대 <버섯의 뜰>, <방주(方舟)와 항아리>, 비디오 모니터와 <신체적 영상> 그리고 <전자 정원> 등등이며 여기에 다시 일련의 부조(浮彫)작품이 곁들어 진다.
그리고 이들 모두가 각기 응축된 종교적 상징성을 지니고 있음은 물론이다.
이들 몇 가지 유형 중에서도 특히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이 작가 자신이 또한 오래전부터 구상해온 것이 <버섯> 설치이다. 심영철에게 있어 버섯은 생명의 또 하나의 원천 즉 원초적 생명체를 의미한다. 뿐만 아니라 그것은 시 · 공을 뛰어넘는 근원적인 생성(生成)의 에너지이자 동시에 인간의 신체성(身體性)을 그대로 포상하고 있기도 한 것이다. 각양각색의 이들 버섯, 그것은 물론 자연의 산물이다. 그러나 이에 그치지 않는다. 그 생명력은 곧바로 인간의 삶과 연계되며 더 나아가 그 삶의 근원인 '사랑'(Eros)과 연계되는 것이다. 그리고 심영철의 예술의 영원한 주제가 바로 <사랑>이다.
심영철에게 있어 그 사랑은 다름 아닌 신(神)의 '섭리'요 그것 또한 '만남'의 섭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인간이 신과 만나는 것 역시 이 사랑을 통해서이다. 그리고 그 섭리는 더 나아가 자연을 다스리며 여기에서 인간의 삶-사랑과 자연의 생성과의 합일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심영철의 설치 작품이 <버섯>을 통해 형상화하고 있는 것이 바로 그 합일의 세계라 할 것이며 이와 함께 역시 특기 할만한 사실은 기법적인 차원에 있어 그 세계를 구현하기 위한 테크놀로지의 적극적인 도입이다. 그리하여 심영철의 작품은 주제의 종교적 차원에 있어서의 신과 인간, 자연과 테크놀로지의 '만남'의 장(場)이 순전한 조형적인 차원에 있어서는 일종의 '종합적 환경 예술'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자리에서 심영철의 전시 작품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유보할 수 밖에 없다. '설치'라는 작업 자체가 현장 작업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서 미리 완성된 작품과의 대결이 불가능하다는 이야기이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심영철의 이번 작품에 접근하는데 있어 간접이나마 길잡이가 있기는 하다. 그 동안의 작품 활동의 발자취를 되돌아 본다는 것이 그것이다. 또 실제로 그것이 단순한 회고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심영철의 작품 세계에 대한 재조명이라는 의미에서도 되새겨 봄직한 일이라 여겨진다.
물론 이 자리에서 그 발자취를 되새겨보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문제는 심영철 자신이 말했듯이 그녀의 작업이 '예술적 메시지에 있어서의 개념과 방법의 결합'에 있다고 했을 때, 그것이 실질적으로 어떠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가에 있다 할 것이다. 이에 대한 답은 역시 작가에 의해 주어지고 있다. '새로운 조형 공간을 창출하는 복합적 예술 환경(Total Environment)의 제시가 그것이며 그 과제가 예나 지금이나 일관성 있게 추구 되고 있는 것이다. 그와 같은 일관된 추구의 정신적 자원이 큰 신의 '섭리'에 대한 믿음이거니와 또 한편으로 여기에 작가로서의 또 다른 원동력, 즉 '실험 정신'이 작동하고 있으며 거기에서 태어나는 것이 오늘에 이르기까지 심영철의 작품이 보여주고 있는 폭 넓고도 다양한 조형적 레파토리이다. 또 그러기에 심영철의 작품을 한마디로 '설치'라고 하기에는 어딘가 미흡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없지 않다. 어쩌면 그녀 자신이 말하는 '복합적 예술 환경'이라는 개념이 그것을 말해주는 것인지도 모르며, 또 바로 그것이 조형 예술의 또 다른 지평(地平)을 제시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996.4. 이 일 (미술평론가)
출처 : 1996. 5 갤러리 아트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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