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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내 예술세계의 모티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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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종교 사이에서의 위험한 외줄타기 - 김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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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707회 작성일 22-06-14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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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종교 사이에서의 위험한 외줄타기



심영철은 키네틱 조각가이며 설치미술가이다. 그녀는 비디오나 네온 뿐 아니라 홀로그램, 가상현실, 광섬유 등 순수예술의 분야에서는 잘 다루어지지 않는 첨단 소재나 매체까지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매우 드문 작가 가운데 하나이다. 특히 전시공간 전체를 특유의 화려함으로 하나의 질서 안에 통합시키는 환경 조형적 역량과, 자르고 붙이고 깍아내는 모든 과정을 수작업으로 진행하는 우직한 장인기질을 지닌 매우 신뢰할만한 작가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녀의 이러한 조형의식과 실험정신, 또 장인기질도 1990년대 이후 일관되게 그녀를 지배해온 정신세계에 대한 고찰없이는 그 진정한 가치를 획득할 수 없을 것이다. 사실 그녀의 작업에 있어 가장 중요한 부분이 바로 이 정신적 영역과 외형적 표현형태의 결합방식이 주는 독창성에 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심영철은 자신의 삶의 의미이자 영감의 원천인 신앙의 샘으로부터 모든 작업을 시작한다. 또 그 신앙은 신으로부터 받은 깊은 사랑의 체험에 의해 체화된 구체적 삶의 원동력이기도 하다. 그녀는 자신의 삶과 신앙과 예술을 분리하지 않는다. 삶이 곧 신앙이고 신앙이 곧 예술이며 예술이 곧 그녀의 삶이다. 신앙은 그녀에게 기쁨과 사랑을 선사했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작품은 대체로 아름답다. 조형적으로 잘 다듬어진 형태와 색채들은 보는 즐거움을 선사하며 네온과 홀로그램에서 발하는 신비스러운 빛들은 관자들로 하여금 황홀경을 경험하게 한다. 적(赤)과 흑(黑)의 성경더미, 흐르는 물, 우아하게 흔들리는 시계추의 움직임은 강렬한 메세지의 메타포로서 미적 감상의 충동을 일으킨다.


그녀는 이처럼 자명한 아름다움의 원리를 그대로 수용한다. 사실, 그녀에게 있어서는 십자가의 가시관조차 아름답다. 왜냐하면 그 가시관은 구원을 위한 사랑의 징표이며 부활의 희망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제껏 심영철은 성경 속에 나타난 구원의 메세지를 거의 직설적으로 ‘선포' 하는 작업을 해왔다. 이러한 태도는 일견 비기독교인 관자들로 하여금 거북한 감정을 느끼게 하는 부정적 요인이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녀의 신은 이제 그녀로 하여금 신의 창조물들에게로 시선을 돌리도록 허락한 듯 하다. 이번 전시회를 통해 그녀는 자연에서 영감을 얻었음이 분명한 작품들을 주로 내놓고 있다. 이러한 변신의 뒤안길에는 우연한 기회에 접한 신의 섭리가 숨어있다. 어느날 비젖은 잔디위로 솟아나온 새하얀 버섯머리들을 보았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 예쁘고 아름다와 그만 한눈에 반해버렸다고 한다. 조물주의 오묘한 섭리가 바로 자연속에 드러나고 있음을 깨달은 것이다. 이때부터 그녀는 버섯작업에 매달렸고 팽이버섯, 송이버섯, 느타리버섯 등 우리의 식탁에서 친근하게 볼 수 있는 버섯류들을 갖가지 형태와 개념으로 형상화하기에 이른다.


그런데 이번 전시회에 출품된 버섯들의 형태가 기묘하게도 성(性)적인 상상을 유발시킴은 어찌된 명분인가? 특히 팽이버섯군(群)으로 이루어진 설치작업을 보노라면 남근예찬의 원시신앙을 노래하는 듯한 착각마저 일으키게 된다. 형태나 색채 또한 토속적이어서 그녀의 종교인 기독교 문화와 얼핏 조화되지 않는 느낌을 준다. 심영철은 교계의 일각에서 추진되고 있는 기독교 토착화 문제에 관심이 있는 것일까? 이를 염두에 둔다 하더라도 흔히 서구 기독교 문화가 성적인 표현을 억압해왔다는 것을 고려할 때 이러한 에로틱한 이미지는 매우 독특하면서도 일말의 혼란을 야기하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이번 전시회를 통해 심영철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신의 인간에 대한 사랑이 자연계의 성적인 사랑처럼 매우 구체적이며 감성적이라는 것이다. 사실, 성서가 증언하는 신의 표현이 매우 인간적인 것임을 상기할 때 이러한 접근이 무모하다고만은 볼 수 없다. 이 전시회의 주제인 '사랑은 죽음처럼 강하고‘(아가서8:8)와 같이 성서에서 신과 인간과의 관계를 연인 혹은 부부 관계로 묘사하고 있는 부분을 찾아내기란 어렵지 않다. 인간의 정신과 종교와의 관계를 탐구한 미국의 정신분석학자 스콧 펙(Dr.Scotu Peck)도 그의 저서 「길 떠난 영혼」에서 신과 인간과의 관계는 전통적 의미에서의 남성과 여성의 관계와 유사하다고 진단하고 있다. 자연속에 가득찬 성적 현상들은 신의 본질에 대한 하나의 투영일지 모른다. 이러한 깨달음에 이른 뒤 심영철은 자연은 물론 토속적인 모티브에 나타난 성적인 이미지들에 주목하기 시작한다. 따라서 그녀가 즐겨 사용하는 화려한 빛과 색채의 향연들은 전통의 기독교적 색채상징과 전혀 무관하다. 그녀는 기독교적 메세지와 신념을 표현하고 있으면서도 서구 기독교미술의 전통과 굳이 연결되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녀는 자연본위의 이방문화 혹은 한국 고유의 토속적 미의식과 체질적으로 맥을 대고 있는 듯이 보인다. 그럼에도 작가 자신의 감성에 의해 주도적으로 선별된 이 색채들은 신을 향한 환희와 감사, 그리고 사랑의 감정을 가시화한다.


이처럼 심영철은 기독교 교의와 현대미술의 언어 사이에서 위험한 줄타기를 시도하고 있다. 이러한 줄타기는 편협한 기독교 문화의 패러다임을 확대하고 새로운 금기로서의 기독교(20세기 이후 기독교적 소재는 서구미술의 주류로부터 소외되어왔음을 상기하라)를 현대미술의 현장에 재등장시키려는 잔망으로 작용한다. 근래 서구사회에서 기독교는 이미 과거와 같은 절대 권력과 영향력을 지니고 있지 못하다. 그들은 식어버린 사랑을 대치할 대안으로 동양사상에 새로운 관심을 보내고 있는데 이러한 경향은 현대미술의 장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그들에게 있어 동양은 새롭고 신비스런, 아직 탐구할 것이 남아있는 그 무엇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서구인들의 관점일 뿐, 그들에게 새로운 것이 우리에게도 새로운 것은 아니다. 사실 우리에게 새로운 것은 오히려 과학문명이나 이성주의, 혹은 기독교 사상 따위일지 모른다, 그럼에도 서구문화의 패러다임에 종속되어 있는 우리들은 그들이 우리의 전통문화에 관심을 가져주는 것에만 감격하여 종속적으로 '우리것'에 집착해온 면은 없는지 자문해 볼 일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심영철은 진정한 새로움에의 충격을 우리에게 전달해준다. 그리고 이 새로움에의 충격은 아마도 서구인들과 우리에게 각기 다른 양상으로 나타나리라 생각된다. 서구인들로서는, 자신들의 옛 연인이 동방의 이국적 새 연인과 신선한 사랑을 나누는 장면이 매우 현대적이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가 볼 때 심영철은 우리의 정서를 바탕으로 새로운 정신과 방법론을 동시에 제시하는 선구자들 가운데 하나임에 틀림없다. 그녀의 뜨거운 신앙과 끊임없는 실험정신의 이 모순적 통합이 심영철의 개성이자 가능성이다. 이 가능성이 앞으로 어떠한 방향으로 성장해갈지는 그녀의 신 외에 아무도 알 수 없으리라. 그러나 심영철의 작업이 예술적 성취를 결코 포기함 없이 그녀의 바램대로 신의 영광과 인간의 구원을 위한 작은 도구로 쓰여지기를 소망하는 것은 우리 인간의 몫이다.


김혜경 (갤러리아트빔 큐레이터) 


1996. 5 갤러리 아트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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