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그님」에 대한 사랑 - 김현숙 > 평론

'사랑'은 내 예술세계의 모티브

Shim, Young Churl
평론 평론

평론

'Love' is the motive of my art world

「아름다운 그님」에 대한 사랑 - 김현숙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댓글 0건 조회 652회 작성일 22-06-14 00:29

본문

「아름다운 그님」에 대한 사랑


시작부터 이야기가 빗나가는 듯하지만심영철을 처음 만나는 사람이라면 우선 그녀의 아름다움에 적잖은 동요를 느낄 것이다확실히 그녀의 아름다움은 눈부시다또한 그 아름다움의 내면에는 선성이 깃들어 있다이것이 내가 그녀의 아름다움을 아끼는 이유이다. 

 

80년대 초로 기억되는데미술대학의 교수님을 뵙기 위해 그 분의 연구실에 들렀을 때 조교였던 그녀를 처음 만나게 되었다맑고 신선한 무독성의 아름다움(이런 표현이 가능하다면)이 느껴졌다아름다움이라면 으레 오만하다거나 무례하기 일쑤이고개성이 없이 유형화된 것들이 판을 치는 경우를 많이 보아왔던 터에다가때로 그 아름다움이 자기를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서 가지게 되는 독성을 수긍하게 되는 때도 있었기 때문이다예를 들면 장미의 가시라든가 화사의 독처럼.

 

그녀는 언제나 아름다웠고 환한 느낌을 지니고 있었고 섬세하고 여린 감수성을 가지고 있었다그녀가 음악을 한다거나 무용 아니면 문학을 한다고 했더라도 나는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다그런데 그녀는 조소를 하고 있었다.

 

모든 예술창작의 어려움은 자주 산고에 비유된다예술적 형상화에 기울이는 작가들의 치열한 정신을 일컬음이겠다특히 조소는 작업 과정이 노동에 비해 결코 덜하지 않을 정도로 물리적인 힘을 필요로 하고 그만큼 체력의 소모가 뒤따르기 때문에 그 어려움을 짐작할 수 있겠다만만치 않은 작업량에 바쳐야 하는 노동력은 곧 시간과의 싸움이며 고독한 인내 자체이다무형의 물질 매체들과 벌이는 고독한 싸움그녀는 진정한 노동의 의미를 조탁해내는 예술가이기 이전에유형지에 버려진 죄수나 로마시대의 노예를 자처했는지도 모른다지문이 지워질 정도의 험한 수작업으로 그녀는 자신의 열정을 연소시키곤 하였다.

 

그리하여 1983년 이른 봄그녀는 <빗의 단계적 표상>이라는 타이틀로 첫 개인전을 갖는다빗은 물론 여성만의 전유물이다그러나 심영철은 빗의 여성성에 우선 주목하였다빗의 어떤 이미지에 매료되었던 것일까일차적으로 그녀는 단장도구 본연의 형태적 아름다움에 주목하고 그 외양을 넘어 안으로 삭이고 다스려 가지는 옛 여인들의 정절연모정념 등 즉 그들이 다잡아 지키고 다스리고 간직한 정서의 표상적 이미지에 부심하였다가지런한 빗살 하나 하나의 음영속에 깃들어 있는 여인들의 정결한 마음가짐과 또 한편으로 정밀한 갈망의 언어를 읽어내고자 했던 것이다.

 

나무가 가진 본래의 결과 빗살의 요철이 아우르며 빚어내는 조형미는 소박하고 견고한 나무의 외형적 질감으로부터 여인의 내면적 정서를 표상해 내는 통합에 의해 진정한 여성성의 아름다움을 추구해낸 것이다.

 

지층의 단면을 연상시키는 나무의 결에다 수직으로 길고 짧은 빗살의 홈을 파고 빗살 끝을 유연하게 둥글린 작품아랫입술 모양의 조형에 윗부분은 빗살을 반달 모양으로 올려서 마치 여인의 단순호치를 동시에 표상한 듯한 작품 등 빗의 다양한 외형적 형상화에서 그녀는 섬세한 조형감각을 발휘하고 있었다특히 전체적으로는 집 모양 같기도 하고 목선 같기도 한 조형의 아랫부분을 수백 개의 고기비늘 모양으로 파낸 후 다섯개의 뱃살을 지붕처럼 얹은 작품은내게 정념의 바다에 침몰하는 여인의 갈망 같은 이미지로 다가왔었다.

 

학창시절부터 그녀는 자신에게 요구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내려는 치열성을 포기하는 법이 없었다또한 새로운 것에 대한 갈망은 그녀의 체질이자 생리 같은 것이었다.

 

그녀는 예술의 매체들이 나무브론즈와 같은 기존의 익숙한 재료들에 국한되는 것을 거부한다동시에 예술에 일관된 방법론이나 기교에도 저항한다그녀에게 있어 예술의 방법론은 부단한 새로움과 다양함을 추구하는 어떤 것이지 않으면 안된다고착된 방법엇비슷한 매체의 형상화에 대한 강한 회의는 새로운 독창적인 방법론 창출에의 갈망을 의미한다또한 기존의 감각유사한 테크닉으로 부터의 과감한 일탈을 뜻한다.

 

새로운 것에 대한 끊임없는 추구와 도전 실험성이야말로 현대미술의 흐름이기도 하지만 이는 또한 그녀의 예술적인 체질과 너무나 잘 부합하는 특성이었다결국 새로운 예술매체의 개발과예술에 갈망은 1984년 봄 그녀로 하여금 도미를 결단하게 함으로서 제대로의 방향성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이제 정체된 세계를 벗어나 흐름과 소용돌이를 멈추지 않는 유동의 세계활력이 넘치는 세계로 그녀의 예술정신은 달리기 시작한다.

 

그녀의 감성은 푸른 들판을 질주하는 바람이다가격랑의 파도를 타는 돛단배이다가깊이를 모르는 심연의 늪을 탐색하는 영혼이다가그 모두를 끌어안는 활화산이기도 하였다그녀는 활화산의 감성으로 시간 앞에 전개되는 모든 것을 열정적으로 탐식한다바야흐로 그녀의 머리로부터 가슴으로 온통 들끓어 오르는 예술혼은 신세계와 더불어 한바탕 신나는 무도를 시작한 것이다활자화된 모든 정보물, TV와 비디오 등의 다양한 영상 대중매체심지어는 슈퍼마켓의 광고물에 이르기까지 그녀는 멀티미디어 세대답게 동시적 감각을 동원하여 숨가쁘게 삼투한다.

 

거리의 표정오가는 사람들의 모습그들의 유행 패턴과 색감건축물의 형태박물관의 전시물쇼핑몰의 디스플레이… 학교의 커리큘럼과는 사뭇 다른 자유분방함과 무진장한 자료의 홍수 속에서 아웃사이더의 감각을 가지고 문화적인 충격을 체험한다이 모든 것들은 결국 이 나라작가들의 사고를 지배하는 것이며 그 예술의 제작에 적용될 수 있는 것들이었다라이프스타일과 예술성의 접목.

 

그녀는 회상한다새로운 세계로의 여행이 줄곧 그녀를 놀라운 감각과 예술적 모티브의 발견이라는 은혜로움으로 다가왔던 것을특히 사막의 한 가운데 우뚝 선 라스베가스의 밤 풍경-시야 가득 불야성의 장관을 이루고 있던 밤의 현란한 도시는 네로의 로마가 아닌 그녀의 로마였다라이트 아트(Light Art)의 대작을전신을 찌르는 전율로 체험했던 순간이었다.

 

예술로 접근하는 길은 결코 외길이 아니었다어메이징 스토어(amazing store)역시 그녀의 감성을 한없이 고양시키는 계기를 갖게 하였다골동품에서부터 최첨단 기술에 의해 제작된 물건에 이르기까지 온갖 것들을 모아놓고 파는 가게바로 그녀 자신이 어메이징 스토어 이어야 함을 직감한 것이었다무궁무진한 오브제의 세계그것으로부터 얻어지는 예술충동과 조형이미지그녀는 오브제와의 교감을 만끽하며 마음의 향방을 따라 혼이 치닫는 데로달리는 말의 갈기처럼 연소시킬 수 있는 모든 열정을 기울여 폭식하였다각각의 예술매체에 대한 연구는그것이 가지는 특성을 이미지화하거나 조형화하는데 있어 당연히 요청되는 것이다그녀는 네온비디오 브론즈 캐스팅홀로그램 등을 각각의 전문적인 매체로서 연구하는 교과목(Class)을 공부한다물론 그녀의 대학의 커리큘럼 뿐만 아니라 스튜디오나 뮤지엄에 개설된 커리큘럼을 찾아다니기를 마다하지 않는다각각의 매체는 고유의 표정을 가진다그 표정이 자신의 감성과 어떤 만남을 가질 수 있는 지를 탐색한다.

 

작가 작업실을 탐방하여 그들의 작업과정을 보기도 하고 그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작품세계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클라스도 그녀의 열정을 부추겨주었다큐레이터미술평론가화상 등의 전문 인력이 수강하는 클라스에서는 그들의 안목과 예술상황을 이해하는 전문성에 접할 수 있었다이 모든 클라스가 그녀에게는 진정으로 벅차고 흥분된 자기 연소의 시간들을 제공해 주었다한 그루의 나무나 하나의 식물을 이용해서 그것이 가진 입체감과 색깔을 어떻게 조형에 응용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전시회를 돌아보고 나서 그녀는 예술매체에 대한 다양성의 추구로 부심해 왔던 자신의 생각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감사하였다조형영역의 범위를 넓혀가는 일이야 말로 자신의 프론티어 정신을 가장 세차게 채찍질하는 것이라는 느낌이었다그녀의 용솟음치는 아이디어와 감성은 자신도 모르게 설치미술의 영역으로 돛을 올리고 있었다.

 

5년 남짓의 미국생활과 여행낯선 땅이었지만 예술에의 열정은 바람 탄 깃발이었다의욕한만큼 되돌려 받은 시간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귀국 후 그녀를 기다리는 낯선 풍경과 낯선 얼굴들마주 잡을 다사로운 손 하나정다운 눈길 하나 없는 삭막한 배경 속에 서 있음을 알았다여리고 섬세한 그녀의 감성 탓이었을까.

 

사람을 사랑하는 일의 그 지난함이야 말로 안개 속에 갇히는 일이 아니었던가아픔과 슬픔의 강이 범람한 개펄에 혼자 남겨진 소라고둥.

 

인간에 대한 신뢰그 베일이 벗겨지는 허망함과 아픔또 다른 연민과 갈망 때문에 그녀는 얼마든지 쓰러지는 갈대가 되어야 했다아픔을 추스릴 수 있는 용기의 부재.

 

그리고 어느 날.

 

그녀는 그녀만의 아픔과 갈망을 접고 신 앞에 상한 갈대로 섰다신과의 조우는 이렇게 벼랑의 끝에서 시작되었다자기를 충분히 가두고 난 뒤의 만남이었다.

 

1989년 가을Jesus Love You라는 두번째 개인전은 첫 개인전과 6년의 시간적 거리감도 있었지만 오브제의 선택과 해석에서 아주 이질적인 편차를 보인다우선 표제에서 그녀는 Loves를 Love로 표기하고 있다. s를 과감히 탈락시킨 의도를 왜곡을 마음으로 읽는 감상자들은 Jesus가 곧 I(u)로 환치될 수 있음을 눈치챌 것이다찢어진 휘장의 붉은 천과 네온의 과감하고도 이색적인 결합가시면류관의 가시나무와 붉고 파란 네온의 뒤엉킴메시아의 가시나무 등에서 우리는 동통을 느낀다자신의 아픔을 직역한 것일까예술은 직역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대속의 의미를 통해 남의 아픔 위에 자기를 놓아보는 일은 현대인인 우리에게서도 여전히 유효하지 않은가더구나 가시 면류관그 형극의 아름다움이라니

 

인간에게서 타협과 화해를 얻을 수 없었던 그녀는 신의 온전한 사랑 속에서 인간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예술에의 열정을 키우며 신에게 헌신할 수 있음을 자각한다그녀의 간구는 신의 사랑으로 순치되어 신의 섭리로 그녀에게 되돌아온다생애의 활력과 창작의 원동력은 모든 신앙의 밭에서 일구어지고 뿌리내리며 수확되는 것이다사랑과 이별은 신의 뜻으로 다스려지는 이음동의어로 그녀에게는 연역된다온 세상의 삼라만상이 가지는 아름다움미움추악함어여쁨도그리고 그것들이 뿜어내는 온갖 내음도 신의 은총으로 해명된다.

 

이 개인전 이후 그녀를 일관되게 지배해온 정신세계의 염원이 이런 '신앙'의 힘으로 돌려지는 것은그러므로 당연한 것이 아닌가실제로 그녀는 성경의 갈피에서 강한 창작의 유인성을 느낀다고 고백한다그것은 때로 직설적으로 또 때론 묵시적으로 그녀의 예술의 혼과 통합한다.

 

인간에 대한 연민미망은 신의 품안에서 조율되어 섬세한 감성의 테크닉으로 조형된다.

 

솔직히빗살의 균제된 아름다움과 여성성을 통해 심영철을 처음 알게 된 나는 15백 개의 바이블이나 촛불들을 오브제로 한 신앙 고백적 퍼포먼스로의 변신이 너무나 의외였고 충격적이기까지 하였다동양적 정서가 서구적 실험성으로 뒤집어진 듯한 느낌이라고나 해야 할 지평범한 애호가의 안목이 당황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모두들 오늘의 그녀를 설치미술가로토탈 아티스트로 부르며 새로운 기법에의 끊임없는 도전과 강한 실험성을 가진 그녀의 치열한 장인의식을 문제 삼는다설치미술가로서의 변신에 대한 나의 낯설음은 그녀가 감당해내는 적지 않은 작업량과 규모를 통해서도 느껴졌고근본적으로 설치미술이 갖는 일회성의 허무감을 극복하는 그 용기에서도 계속된다무엇이 그녀로 하여금 설치미술이라는 실험성에 도전하도록 한 것일까인간의 허무의식에 대한 철저한 수용과 이를 극복하려는 인간적 의지인가여기서 나는 느닷없이 시지포스 신화를 떠올린다.

 

그녀는 설치미술이 열려진 공간에서 자유로움을 만끽하는 그 자체로서도 상당히 익사이팅 (exciting)한 작업임을 강조한다설치작업에 들어가기 이전에 전시공간을 머릿속으로 이리저리 구상해보는 일 조차도 억제하기 어려운 희열이라는 것이다그녀에게는 현대 과학기술까지 동원한 다양한 오브제(각각의 오브제는 나름대로의 조소성을 갖고 있다)를 선택하고그들을 예술적으로 통합하여 다이나믹한 메시지를 독창적으로 전달하는 작업이야말로 생명력 그 자체인 것이다단순히 바라보는 정태적 미술이 아니라 관객까지 동원되어 감각적으로 체험하는 움직이는 키네틱 아트그녀는 사람이든 조각이든 살아 움직이는 유동의 미를그 유기적 생명력을 전달하는 것에 매료되었는지 모른다.

 

자유로움 속의 다양함다양함 속의 독창성그녀는 강단에서도 자기의 감각에 맞춰 표현하라고 강조한다학생들의 내면에 감추어져 있는 조형의지와 놀라운 감각을 밖으로 펼쳐내도록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유분방한 분위기가 주어져야 함을 역설한다학창시절 그녀가 갈망했던 창조적 여건이나 분위기의 창출은 그녀의 감각적 매개를 통해 학생들의 예술 활동을 자극하게 될 것이다.

 

이제 여기쯤에서 나는 어설픈 지인으로서의 진술을 끝내도 좋지 않을까그러기 위해서 그녀를 잠시만 더 가까이서 바라다보기로 한다.

 

신앙의 문제에서 나는 조심스럽게 의문을 제기한다종교와 미술과의 접목은 새로운 것도 아니며 그녀에게 일종의 방법론적 실험성을 띤 일시적 현상이 아닌가하고...

그녀는 단호하다무엇보다 삶과 예술을 별개의 것으로 보지 않거니와 작가는 작품으로 말할 뿐이라는 원론적 입장에 충실하다삶은 신앙인 동시에 예술이며또 다시 예술은 신앙이고 삶이 되는 것이다이러한 삼위일체나 시너지(synergy)가 갖는 통합성의 문제는 나로서는 해명할 능력이 없다그녀의 치열한 장인의식과 부단한 열정만이 대변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녀의 차를 얻어 타고 옆자리에 앉아서 찬송가와 성시를 듣는다왠지 예전의 그녀와 낯설다그럼에도 과거의 분위기를 되살리는 무엇인가가 짧은 순간에 내게로 감지된다그녀는 자신의 신을그의 평온을 내게도 나누어주고 싶은 것일까아니 벌써 나누어주었는지 모른다예술과 종교가 그녀의 열정을 사이에 두고 사이좋게 손잡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나는 그녀의 삶을 주축으로 한 수평상태의 양팔저울을 떠올린다.

 

최근 버섯을 오브제로 한 아름다운 그님의 연작들은 일찍이 내가 알았던 그녀의 선성의 아름다움과 섬세한 감각을 한꺼번에 돌이키게 해 주었다어떤 큐레이터의 말처럼 그녀의 신이 그녀로 하여금 이제 당신의 창조물에게로 시선을 돌리도록 허여했는지도 모른다사랑은 죽음처럼 강하고라는 이 전시회의 주제 역시 강렬한 집착과 갈망의 분위기를 드러내고 있다. '사랑은 죽음처럼 강하고라는 말은 성경에 나오는 구절이라 한다그녀는 그 절대 절명의 진리인 사랑의 힘을 여전히 예술혼 속에 간직하고 있다.

 

고개를 외로 살짝 꼰 듯한 두 개의 버섯이 마주 서 있다슬픔을 삼킨 모습 같기도 하고고독의 몸짓으로 보이기도 하다아니 에로틱하게도 인체의 곡선을 연상시키는 두 남녀의 안타까운 갈망이 어쩌면 뜨겁게 절제되어 있는 듯도 하다.

 

버섯을 홀로 있기보다 무리지어 살아간다버섯의 포자는 바람에 실려 날아간다지향 없이 날다가 알맞은 환경을 만나면 싹이 트고 어린 버섯으로 자라나 어른 버섯이 된다나무의 그루터기나 쓰러진 나무에 기생하면서 음지에서 숨 죽이 듯 살아가는 버섯의 생리그녀는 버섯의 모습에서 천태만상의 인간의 모습을 본다연인의 사랑가족의 사랑등 돌린 사랑의 아픔핏줄의 소중함또다시 조우하는 사랑.

 

사랑과 신앙의 두 세계를 아우르기까지 그녀는 얼마나 오랜 인고의 시간과 아픔의 늪에 머물러야 했던가절대자 앞에서는 늘 부족하고 모자란 피조물로서의 인간은 너무나 버섯을 닮아 있지 않은가.

 

이제 그녀는 신 안에서 한결 같은 그 사랑을 통해 상처 입은 사랑을 아파하고 신음하기보다 그 사랑의 치유를 위해 기도한다.

 

내 사랑의 빛

한 줄기 빛이런가

어찌할거나

풀잎마다 서는 저 그리움

모질게도 자꾸 일어나

그리움에 몸져눕는다.

오한과 신열

벚꽃이 바람에 눈꽃처럼 날리는데

추워라

선홍빛 핏방울이 떨어지는 것

살점을 뚝뚝 베어내어

버섯을 심는다.

(하략)

 

-작가의 메모 중에서

  

시인의 언어로도 다하기 어려운 그녀의 노래에서 그 옛날 그녀의 눈부신 감성을 만난다아름다운 그님은 그녀의 생 어딘가에 끼여 있다아름다운 그님은 때로 아프게때로 슬프게때로 아름답게 그녀를 간섭할 것이다그러나 신의 피조물로서의 가장 아름다운 그님에 대한 그녀의 사랑은 선성의 아름다움으로 펼쳐질 것이다.

 

김현숙(성신여대 국문과 교수)

1996년 8월호 미술세계 작가를 찾아서에서 발췌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