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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액티브와 교감이 이루는 미의 향연 - 이재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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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702회 작성일 22-06-05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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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액티브와 교감이 이루는 미의 향연>


설치작가 심영철은 전천후 공간의 창조자다. 어떤 공간이 주어지든 다양한 전략과 매체, 자신만의 독보적인 해석과 연출로 근성과 개성이 넘치는 놀라운 축제의 공간들을 창출해내는 작가다. 작가는 20년 넘게 풍부하고도 섬세하며, 때로는 쇼킹하게 자신만의 세계를 일구어왔으며, 언제나 변화무쌍한 새로운 모티브와 방법으로 나타나곤 한다. 타고난 때문인지 그의 전시는 언제나 시끌벅적한 한마당 축제가 된다. 주어진 중성적 공간, 그리고 그것을 놀이와 교감의 마당으로 꾸미는 작가의 감각과 발화, 관객들의 참여, 이 모두가 유기적으로 조합되고 구성됨으로써 역동적인 미의 향연이 되는 것이다. 그야말로 오감(五感)이 즐거워지는, 나아가 제육감(第六感)까지도 가동되는 미의 한마당 잔치에는 작가의 공간적 미술이 자리하고 있다.

 

이번 석주미술상 수상기념전 역시 또 한 번의 참신한 볼거리와 한마당 잔치로 준비되고 있다. 언제나 그렇듯 입체와 평면이 전체 전시 공간을 수놓는 설치를 근간으로 오브제와 빛, 강렬하다 못해 현란하기까지 한 퍼포먼스 및 관객의 능동적인 참여 등이 함께 하는 전시이다.

 

작가의 매체나 오브제들은 이제 더 이상 새로운 것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다양하고 변화무쌍하다. 트럭 한 대 분의 1500권 성경책 설치와 그것들을 배포하는 퍼포먼스, 전자정원을 통한 종합적이고 입체적인 연출, 환상과 환각을 불러일으키는 홀로그램, 각종 미디어 영상, 전통 공예와 조각, 그림...... 그야말로 미술에서 볼 수 있는 모든 것이 망라되고 있다.

 

그러고 보면 작가는 공간에 대한 탐구와 매체에 대한 탐구를 부단히 해 오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고 작가의 작업이 아무 것이나 혼재된 부류의 것은 아니다. 작가의 작업은 항상 자연, 그리고 그 너머의 초월자와 교감하고자 하는 영적 구도의 자세가 기본적으로 깔려 있다. 인간으로서 거부하기 어려운 본능과 자유로운 꿈꾸기 등이 혼재된 속에 승화와 정화를 언제나 결론으로 설정하고 있다.

 

때로는 남근을 너무도 닮은 버섯 형태의 발칙한(?) 연출이 오히려 작가의 진지함과 솔직함을 보여주곤 한다. 이렇듯 발칙해 보이는 형상들이 나타나 혼란을 줄 수도 있지만, 지극히 자연스러운 섭리를 서술하고 있는 것이며, 아울러 성과 속의 갈등과 조화가 결국은 우리 인간의 숙명적인 것임을 성찰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이는 혼자만이 절대자 앞에서 고고한 체 하는 고담준론이 아니라 내면의 진지한 고뇌를 반영한 자기 성찰이자 고백이어서 호소력을 가진다.

 

언제나 주어진 공간은 작가에게 중요하다. 공간을 해석하고 연출하는 것이 작가로서 가장 중요한 과제라 믿기 때문이다. 이번 작업은 모두 주어진 4개의 층을 통해 하늘, , 물이라는 모티브를 설정하고 있다. 1층의 경우는 로서 수생식물들이 묘사되어 있는데, 단순한 서술로 넘길 것은 아니다. 우리 자연계 생명체의 근원으로서 한 송이의 꽃에도 또 다른 무수한 생명의 조직과 원형들이 모자이크처럼 조직화되어 비로소 하나의 군집적 생명체를 이루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신전 기둥과도 같은 좌대 위에 화사하게 피어 있는 꽃은 유리, , 자수정 등이 모자이크처럼 박혀 있어 마치 묵시록에서 기술되고 있는 천국의 모습을 상징하고 있는 것 같음을 읽을 수 있다. 4층에서는 하늘을 상징하는 거대한 천장 설치가 이루어지게 되는데 홀로그램과 미디어의 연출에 의해 경건하고도 몽환적인 대기가 연출된다. 또한 2, 3층에서는 땅을 상징하는 것으로 벽에 강렬하고도 다중적인 일루전과 리얼리티가 혼재됨으로써 피조물에 대한 애정, 그리고 그 생성과 존재 및 운행의 권능자에게 무한한 경의와 경배를 보내는 메시지도 복합적으로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 작가의 작업은 복합적이고 다의적이지 않은 것이 없다. 어느 것 하나도 한 가지 코드로만 해석될 수 있는 것이 없다. 일찍이 어떤 비평가가 탈모던의 담론을 기술하면서 대표작가로 거론했던 내용 그대로이다. 입체와 평면, 정적인 것과 동적인 것, 이질적 양식이나 매체 및 재료의 조합, 신성과 세속적 쾌, 자연 생태와 인간 등의 모든 것이 복합적으로 조합되며 부단히 운동함으로써 거대한 우주의 본질을 상징하고도 있다. 다분히 혼돈이 세계상을 반영하고 있으면서도 그의 논리적 귀결은 대체로 승화와 치유로 모아진다. 말초적이고 관능적인 쾌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모두가 선(좋음)을 향한 승화의 과정을 거칠 때 가치를 발하며, 내면의 치유가 가능해질 것으로 믿는 것이다.

 

한마당 축제에서의 오감적 유희와 즐거움을 통해 미의 이상은 표면적으로가 아닌 보다 은유적이고 비밀스런 방식으로 구현된다. 그런 가운데 무언가 여운을 남기며 찰나적으로라도 생각하게 하는 것, 그것이 무엇이든 작가가 붙잡고자 하는 궁극이다. 드넓은 공간에서 펼쳐지는 환영과 환각의 축제에 참여한 관객의 호기심과 미세한 반응조차도 작품의 중요한 요소를 이루게 된다는 점, 바로 그것이 작가가 고집하는 미학의 요체일 것이다.


이재언(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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